매일신문

[계산동에서] 갓바위 케이블카

어린시절, 비 내리는 날이면 우산 아래 몸을 딱 붙이고 걷는 연인들을 볼 수 있었다. 우산 하나는 접어든 채 한 사람이 쓰는 우산 아래 두 사람이 들어갔으니 두 사람 모두 한쪽 어깨가 젖기 일쑤였다. 어린 마음에 '사람들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우산이 없는 것도 아니고, 들고 나온 우산을 접어들고 공연히 비를 맞으며 걸으니 말이다.

우산 하나를 접어 든 연인들은 각자 한쪽 어깨를 빗방울에 내주는 대신 연인의 체온과 마음을 얻고 싶어 했다. 우산 아래에서 그들은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에 대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 나누었을 것이다. 몸을 맞대고 걷고 싶은 연인들의 마음을 몰랐던 것은 어린아이의 호르몬 때문이었을 것이다.

팔공산 집단시설지구와 갓바위를 연결하는 케이블카 추진을 두고 찬반이 엇갈린다. 케이블카를 설치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케이블카 설치를 통해 주변 자연환경 파괴를 막고 지역 경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경산 쪽에서 갓바위로 오르면 2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아 외지 관광객들이 집단시설지구 쪽이 아니라 경산 쪽을 선호한다는 것도 이유다.

케이블카 설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케이블카가 주변환경을 파괴할 것'이라고 말한다. 갓바위를 관리하는 조계종 선본사측은 '케이블카 설치는 민족문화유산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 불교성지를 관광상품화하려는 행위'라고 말한다. 연간 1천만 명이 갓바위를 찾는 이유는 이곳이 '정성을 다해 빌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 준다'는 성지이기 때문인데, 무심한 관람객이 케이블카를 타고 밀려오면 '성지'의 의미가 훼손된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선본사는 6월부터 '케이블카 설치 반대서명 운동'을 펼쳤고 지금까지 약 4만 명이 서명했다.

갓바위 올라가는 길은 분명히 힘들다. 쉬었다가 가는 사람도 있고, 끊임없이 뒷사람들에게 추월당하며 느리게 올라가는 할머니들도 있다. 그래도 작년에 1천만 명이 갓바위를 찾았다.

땀 흘리며 수고롭게 갓바위에 오르는 사람의 마음은 우산 하나를 접고 한쪽 어깨를 빗방울에 맡긴 연인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연인들이 빗방울 피하는 법을 모르지 않았듯, 땀 흘리며 갓바위에 오르는 사람들 역시 케이블카가 편하다는 사실을 안다. 연인들은 한쪽 어깨를 빗방울에 맡기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기를 원했고, 수고롭게 갓바위에 오르는 사람들은 그 수고로운 과정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다.

갓바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제 각각이다. 어느 쪽이 옳은지, 어느 쪽이 더 득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갓바위로 향하는 케이블카를 설치하기 전에 몇 가지 질문에는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갓바위는 우리문화와 불교의 성지인가? 아니면 설악산 흔들바위와 비슷한 관광지인가?

수고롭게 가는 대신 케이블카 타고 휑 가서 기도해도 갓바위는 소원을 들어줄까? 100평 정도 되는 갓바위 기도자리에 케이블카에서 내린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도 사람들은 거기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갓바위를 찾아 기도하는 사람이 지금보다 줄어도 갓바위의 의미는 여전할까? 만약 갓바위의 의미가 훼손돼도 연간 1천만 명이 갓바위를 찾아올까?

옛 연인들은 빗방울에 한쪽 어깨를 내주는 대신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었다. 수고롭게 걷는 대신 케이블카를 탔다가 자칫 소중한 것을 잃는 것은 아닐까. 신중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조두진 문화부 차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