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연세대 교수가 1996년부터 2008년까지 쓴 단편소설 30편을 묶은 소설집이 나왔다. 마 교수의 첫 단편집인데 여전히 '야한' 소설들이다. 마광수 교수는 1992년 소설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으로 구속돼 수감생활을 했고 1995년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돼 연세대에서 해직됐다가 1998년 복직했다. 이후 2000년 재임용 탈락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현재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마광수 교수는 1989년 에세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고, 1992년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로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한 논란을 낳은 바 있다. 소설 '즐거운 사라'는 변태성욕, 페티시, 노골적 성애 묘사 등이 문제가 돼 사법처리까지 받았다. 출판물의 사법처리라는 점에 대해 당시 세간의 상당한 비판이 있었다.
이후에도 마 교수는 '나는 헤픈 여자가 좋다' '유혹' '권태' '빨가벗고 몸 하나로 뭉치자'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이 책들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제목으로 짐작하건대 '야할 듯'하다.)
이번에 나온 단편소설집 '발랄한 라라'는 '즐거운 사라'에 비해 충격적이지도, 흥미롭지도 않다. 물론 감동을 주는 소설은 더더욱 아니다. (일종의 짜증도 감동이라고 한다면, 감동이 있기는 하다.) 세월이 어떤 세월인데 마 작가는 이렇게 닳고 닳은 아이들 잡담류의 이야기를 계속 쓰는지 모를 일이다.
1980년대 이념의 시대가 저물고 문학도 사람도 어디로 가야할지 우왕좌왕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둠의 자식들' '장길산' '남부군' 등 이념소설, 노동문학, 정치적 저항작품이 저물어가던 시절에 등장한 마광수 교수의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와 이후 소설 '즐거운 사라'는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세간의 평가대로 그것이 천박한 유행의 탄생이든, 싸구려 잡담의 확산이든 마광수 교수의 작품은 우리나라 문학에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급기야 '즐거운 사라'로 사법처리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는 했지만.
작가 마광수는 '가자 ! 장미여관으로'와 '즐거운 사라'에서 긴 손톱, 매니큐어 칠, 긁어주기, 빗자루처럼 긴 속눈썹, 높고 뾰족한 하이힐, 미니 스커트, 무거운 귀고리, 코걸이, 팔찌를 이야기했듯 이번 소설집 '발랄한 라라'에서도 여전히 그런 단어들을 나열하고 있다. 혀에 단 커다란 피어싱은 이번 소설이 처음인지 모르겠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특히 손톱 페티시는 한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 열 번이 지나도 계속된다. 이것이 마교수의 개인적 취향인지 모르지만, 별로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억지로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쯤 된 '농땡이'들이 뒷골목에서 하루종일 이죽거릴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쏟아내고 있다.
농땡이 치기 좋아하는 중·고등학생들 뒤를 하루쯤만 관찰해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말썽부리기 좋아하는, 공부는 치우고 종일 놀고 싶은 중·고등학생들은 후미진 골목에서, 사람들 왕래가 뜸한 공원에서 하루 종일 침을 뱉듯 이런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 아이들은 지나가는 여고생, 여중생, 아줌마, 아가씨 가리지 않고 난도질하고 마음대로 째고 자르고 칼집 넣고 난리굿판을 펼친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그 아이들의 행동도 그 비슷한 수준이다. 마 교수가 그렇게 찬양하는 '오럴 섹스'도 아이들에게는 예외가 아니다.
마 교수는 이번 책에서 '성은 그것이 어떤 양상이든, 다시 말해서 아름답든 추하든 건강하든 퇴행적이든, 우리의 실존 그 자체일 뿐 도덕적 당위와는 거리가 먼 문제라고 당부한다. 그는 특히 는 말처럼 허위적이고 이중적 위선으로 가득 찬 말은 없다고 주장한다. (중략) 정치나 사회 등 다른 것은 다 리얼하게 해부해서 표현해도 되지만, 성만은 예외라는 식의 사고방식이야말로 반(反)리얼리즘의 문학관이라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성 문제가 도덕적 가치(기준)에 가려져 있는가? 성 문제에 관해 우리 태도가 위선적인가? (만약 대학교 노천강당에서 '대학생 연합섹스'를 펼쳐야 솔직한 성이라 주장한다면 -소설 '자궁 속으로 사라지다'의 한 장면- 현재 한국사회의 성문화는 위선일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공개적 공간에서 연합섹스는 성 표현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취향에 가까울 것이다.)
마광수 교수의 소설은 예술이냐 외설이냐를 따지고 말 게 없다. 적어도 성과 관련한 이야기를 두고 예술이냐, 외설이냐 경계를 짚어야 할 만큼 이 시대 한국사회가 도덕적이지도, 꽉 막히지도, 유치하지도 않다.
그래서 마광수 교수의 이번 소설집 '발랄한 라라'는 유죄도 무죄도, 선도 악도 아니다. 다만 이번 마 교수의 소설은 종일 놀 궁리만 해대는 중학생들이 모여서 쏟아내는 시시껄렁한 이야기일 뿐이다. 농땡이 청소년이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 농땡이가 아니더라도 성인이 되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 그러나 이제는 심드렁해져서 입밖에 드러내기도 재미없는 이야기들일 뿐이다.
만약 마광수 작가가 '예술이란 불온하고 자유로운 것이며, 형식에서 벗어나 충격을 주는 무엇' 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그래서 충격을 주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면 틀렸다고 말해 드리고 싶다.
이 책 '발랄한 라라'는 충격적이지도 감동을 주지도 않는다. 만약 이 책의 내용이 마 교수와 주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다면 '주변환경'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너무 얌전하고 공부에만 몰두해온, 꽉 막힌 학생들에 둘러싸여 지내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모름지기 소설은 감동(분노든 눈물이든 슬픔이나 웃음이든)을 주거나 재미를 주어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충격이나 영향을 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청년 마광수'의 '가자! 장미여관으로' '즐거운 사라'는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어두운 골목길에서 키들거리는 중학생의 이빨' 같아 아쉽다.
이 단편집은 304쪽에 단편 30편을 담고 있는데 마 교수는 200자 원고지 20매든, 100매든 짧은 글이면 모두 단편이라고 말한다. 적어도 단편소설이라면 50매 이상은 돼야 한다는 것은 틀린 생각이며 짧은 이야기 속에 '단편다운 이야기'를 넣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304쪽, 1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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