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700자 읽기]내 안의 빈집

민병도 지음/목언예원 펴냄

사는 일 힘겨울 땐/동그라미를 그려보자/아직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 있어/비워서 저를 채우는 빈 들을 만날 것이다/못다 부른 노래도/끓는 피도 재워야하리/물소리에 길을 묻고/지는 꽃에 때를 물어/마침내 처음 그 자리/홀로 돌아오는 길/세상은 안과 밖으로 제 몸을 나누지만/먼 길을 돌아올수록 넓어지는 영토여/사는 일 힘에 부치면/낯선 길을 떠나보자/

지역에서 화가이자 시인으로 활동 중인 민병도씨가 11번째 시집 '내 안의 빈집'을 출간했다. 유가 폭등, 고환율, 널뛰는 물가 등으로 국내 경제가 어지럽다. 제2의 IMF가 올 것이라는 위기설까지 제기됐다. 이 땅에 사는 많은 샐러리맨들은 오르지 않은 것은 월급뿐이라며 더욱 얇아진 지갑에 벌써부터 겨울나기가 두렵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저자에게도 이러한 현실이 안타깝게 다가온 것일까. 시집 첫머리에 팍팍한 삶을 노래한 '동그라미'를 얹어 놓았으니….

소쩍새 울던 자리에/턱을 괴고 앉은 적막/그 적막의 뒤뜰 연못/몰래 숨어 달이 뜨면/올 사람/아무도 없는/화롯가에 찻물 끓는/ 시집에 실린 '9월'이라는 제목의 시다. 가을의 문턱에서 저자는 "집을 비운 사이 연못에 핀 백련에 눈과 마음까지 빼앗겼다. 시도 눈부신 눈부신 백련처럼 순한 향기와 진한 감동으로 다가설 날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111쪽, 7천원.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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