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손모(47·여)의 인생은 눈물뿐이다. 19년전 남편을 만나 결혼할 때만해도 영원히 행복할 것 같았다. "결혼한지 얼마안돼 남편이 빚 600만원을 지고 회사를 그만뒀어요." 파출부, 식당 허드렛일 등 그녀는 죽을 힘을 다해 일했고 빚을 갚아나갔다. 그러나 영업용 택시를 하던 남편이 그만 사고를 냈다. 합의금을 마련하느라 다시 빚을 졌다. 최근에는 시아버지까지 병석에 누워 중환자실에서 1년을 입원했다. 남편은 월급이라며 45만원을 가져왔다. 전세보증금을 뺐고 여기저기서 돈을 빌렸다. 손씨 자신은 눈이 아파 수술을 받았지만 곧장 퇴원했다. 젊은날 너무 많은 일을 해 이제는 팔 인대에 힘을 주지도 못한다. 빚더미 인생, 그녀는 한 개인의 최후의 선택인 파산을 상담하러 법무사 사무실을 찾았다.
#2.김모(40)씨가 직장을 그만두고 대출을 끌어다 이동통신 대리점을 연 것은 3년전. 처음하는 일이다보니 운영비가 필요할 때마다 카드로 메웠다. 하지만 제때 돈을 갚지 못하면서 이자가 불었고, 부친까지 위암에 걸려 돈 들어갈 곳이 많아졌다. 당초 2천600만원이었던 대출 및 카드 원금은 금새 불어나 7천만원을 넘겼다. 월세 30만원짜리 집에 부모, 처, 자식까지 모두 여섯. 가족의 생계를 위해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지만 한달에 230만원으로는 매달 돌아오는 이자 대기도 버거웠다. 가정은 파탄지경에 이르렀고, 김씨는 신용회복위원회에 문을 두드렸다.
경기침체에 휘청대는 가정들이 '부도'로 내몰리고 있다.
올들어 대구에서 개인회생, 개인파산이나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기 위해 법원이나 신용회복위원회의 문을 두드린 사람만 5만명을 넘어섰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빚의 늪에 빠진 사람들이다.
대구지법에 자신의 채무를 완전히 탕감해달라고 개인파산 신청을 한 건 수는 올들어 7월말까지 5천283건. 지난해 처리된 건수는 9천904건으로 벌써 지난해의 74%에 이른다. 자신의 채무를 일정부분 탕감받고 나머지 빚을 조금씩 갚아가겠다며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건수도 7월까지 5천481건.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을 합하면 1만명이 넘어선다.
대구지법 제2파산 단독 김상윤 판사는 "외환위기 이후 '신용불량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2000년 이후 빚을 감당치 못한 개인들의 파산 신청이 해마다 2, 3배씩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대구지법에 접수된 파산신청은 전국법원 대비 8.7%를 차지했다.
대구 중구 대구역앞 대우빌딩 4층에 있는 신용회복위원회 대구지부. 이곳 상담창구는 최근 경기상황을 그대로 반영해주고 있다. "도와주세요. 더 이상은 방법이 없어요." 요즘 이곳을 찾는 사람은 하루 평균 30여명. 이선인 지부장은 "빚을 내 생계를 이어왔던 서민들이 결국엔 불어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더욱이 최근에는 과소비나 무분별한 카드남발로 '금융부도'에 이른 예전과 달리 사업실패나 생활고가 주 원인이 되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 대구지부에 올들어 6월말까지 다녀간 사람은 3만8천명을 넘어섰다.
위원회 한 관계자는 "IMF이후 경제난이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고, 고(高)물가로 생활비 부담이 급증하면서 막대한 가계부채를 감당하지 못하는 개인들의 '부도'가 앞으로도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