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가 어지러울 때면 태고의 역사를 간직한 순결한 땅을 밟고 싶어진다.
자연의 완벽한 곡선이 존재한다는 순천만.
10월 경남 창원에서 열리는 지구촌 환경축제 '제10회 람사르총회'(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의 공식방문지로 지정된 순천만에 165개국의 습지전문가 2천명이 찾는다고 하니, 미리 그 땅을 밟아보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갯벌의 본래 모습을 만나기 위해 순천만을 찾았다. 2천600여만㎡(800만평)의 광활한 갯벌과 231만㎡(70만평)의 갈대밭으로 이뤄진 순천만은 연안습지 최초로 람사협약에 등록된 세계5대 연안습지라고 하니 생태환경공부도 겸할 수 있다.
바람이 분다. 갈대가 눕는다. 다시 바람이 분다. 제 몸 비비며 갈대는 몸을 일으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광활하다는 순천만 갈대밭. 갈대가 들려주는 노래는 가을과 닮아있다.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갈대는 조금씩 색이 바래가고 있다.
'너를 보고 있으면/마음대로 흔들려도 될 것만 같아/바람이 오면 바람처럼/비가 오면 비처럼/흔들려도 괜찮을 것 같아-김청미의 '갈대숲에서' 중에서'
시구를 음미하며 갈대숲을 따라 난 길을 40여분 걸어가면 야트막한 용산을 만난다. 하늘로 승천하려다 순천만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용산. 용이 우리에게 보여주고픈, 천상보다 아름다운 지상의 모습은 이러했을까. 용의 엉덩이 즈음에 설치된 용산 전망대에 오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수천년 역사를 간직한 갯벌, 강과 몸을 섞는 바다, 누군가 깎아놓은 듯 동그란 갈대밭, 거기에다 아찔한 S자 곡선을 유려하게 그려내는 물길까지. 사람 사는 동네와 어우러지면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뤄 살아가는 평화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이런 뷰 포인트는 세계에서도 드문 곳이라고 하니, 용이 우리에게 선물한 풍경에 새삼 감사한다.
다시 대대포구쪽으로 내려와 순천만 탐사선을 탔다. 탐사선을 타고 바다쪽으로 나가다보면 갯벌의 살아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
방게·칠게·농게 등이 갯벌에 뚫어놓은 구멍들이 재미있다. 그 사이로 짱둥어가 갯벌 위를 뛰어다닌다. 살아숨쉬는 갯벌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강물이 실어온 풍부한 유기물들로 새들의 천국이기도 한 이곳에서 백과사전에서 보던 희귀 새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검은머리갈매기·송곳부리도요새·괭이갈매기 등 희귀새들도 이곳에선 그저 갯벌 식구의 일부일 뿐이다.
제 깃털을 보호하기 위해 바람이 부는 방향을 향해 일제히 앉아있는 새들은 순천만의 또다른 매력. 겨울이면 추위을 이기기 위해 순천만을 찾은 철새들이 군무를 추며 장관을 이룬다. 10월말이면 러시아에서 흑두루미가 겨울을 나기 위해 돌아온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새는 200여종. 우리나라 전체 새 종류가 450여종이라고 하니, 절반 가까운 새들을 만날 수 있는 셈이다.
순천만을 한번 다녀오고 순천만을 안다고 말하지 말자. 봄에는 갈대 새순이 돋아나 신비한 생명력으로 빛나고 여름에는 온갖 종류의 게, 짱뚱어 등의 생물이 마음껏 뛰논다. 가을이면 갈대가 황금물결을 이루고 겨울이면 200여종의 철새가 찾아 장관을 이룬다. 하루의 변화는 또 어떤가. 새벽이면 물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태고의 비경을 선사하고 일몰시간이 되면 갯벌 전체가 붉게 물들면서 갯벌 사이로 해가 진다. 뿐만 아니라 물때에 따라서도 시시각각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갈대숲 옆으로 칠면초라는 풀이 자란다. 햇빛 광선에 따라 일곱 가지 빛깔을 보인다는 칠면초는 요즘같은 초가을이면 붉은 빛깔을 띠며 또다른 장관을 선사한다.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칠면초는 마치 갈대에 불이 붙은 듯 아름다운 가을풍경을 연출한다.
순천만 입구 순천만자연생태관(061-749-3006)은 갯벌과 철새에 대한 정보가 집약돼 있어 자연학습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그밖에 볼거리
송광사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삼보사찰(三寶寺刹)로 꼽히는 송광사는 800년전 보조국사 지눌이 당시 타락한 불교를 바로잡고 우리 불교의 전통을 새롭게 하기 위해 정혜결사(定慧結社)를 벌였던 도량이다. 특히 목조문화재가 많은 사찰로, '국사전', '목조삼존불감', '고려고종제서' 등 국보만 3점을 보유하고 있다. 홍교를 지나 일주문을 거쳐 우화각에 이르면 속세와 인연을 끊고 다리를 건너 불국정토로 향했을 선승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승보전과 지장전이 자리하고 있어 웅장한 기상을 나타내며 각 전마다 피어오르는 향과 은은한 목탁소리, 낭랑한 독경, 찬란한 고찰의 승맥을 이어가고 있는 스님들의 모습이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낙안읍성민속마을
낙안읍성은 삼한시대 마한땅, 백제때 파지성, 고려 때 낙안군 고을터로, 조선시대 성과 동헌, 객사, 임경업군수비, 장터, 초가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성과 마을이 함께 국내 최초로 사적 제302호에 지정된 마을이다. 지금도 성안에는 108세대가 실제로 생활하고 있어 우리 서민들이 살아왔던 옛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다. 남부지방 독특한 주거양식인 툇마루와 부엌, 토방, 지붕, 섬돌 위의 장독과 이웃과 이웃을 잇는 돌담은 모나지도, 높지도 않아 정겹다.
즐길거리
순천만 일대에는 재미있는 교통수단도 많다. 순천시 관광진흥과는 순천역 또는 버스터미널에서 2층버스를 운행, 관광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순천만 일대를 관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1인당 5천원선). 또 뚝방길을 갈대열차를 타고 관광하는 코스도 개발 중이다. 자전거를 대여해 일대를 돌아볼 수도 있는데, 1인용은 3천원, 2인용은 5천원선. 30여분간 순천만 일대를 돌아보는 순천만 탐사선은 성인 7천원, 어린이 5천원.
한편 제10회 람사르 총회 기간인 10월28일부터 11월4일까지 2008 순천만 갈대축제가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일원에서 열린다. 또 이달 말이면 순천시민천문대가 문을 열 예정이어서, 밤에 또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먹을 거리
전남 순천은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그중에도 요즘은 짱뚱어가 제철. 갯벌을 힘있게 뛰어다니는 짱뚱어는 갯벌 위에서 짱뚱어 낚시로 잡아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고단백 음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미꾸라지 추어탕처럼 짱뚱어를 삶아 체에 곱게 거른 후 육수에 된장을 풀어내 우거지 등과 함께 끓여낸다. 남도 음식에 자주 사용되는 깻잎모양의 방아잎이 독특한 향을 낸다.
짱뚱어철을 맞아 순천만 일대 짱뚱어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대대포구 인근 강변장어(061-742-4233)은 3,4인이 먹을 수 있는 짱뚱어탕 3만원, 짱뚱어전골 4만원. 주인장의 취미라는 분재가 앞마당 가득해, 눈 또한 즐겁다.
가는 길
구마고속도로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순천 IC에서 내린다. 여기에서 벌교 방면으로 가다가 순천청암대를 지나자마자 좌회전해 818번 지방도를 타고 10분쯤 달리면 순천만자연생태관이 보인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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