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월가 위기에서 배울 것은

美 금융위기는 수익률 집착때문/과욕부리지 말고 위험에 대비를

아시아 외환위기가 꿈틀대던 1997년 파이낸셜 타임스는 신년 사설에서 "미국 경제가 1990년대 들어 자동차를 타고 질주하고 있는 반면 유럽'일본 등은 그 차가 내뿜는 매연을 마시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틀에 박힌 생각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의 경제적 성과는 기껏해야 평범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현실 진단은 그리 환영받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 대다수 미국인들은 미국 경기가 상승 국면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로버트 브레너도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브레너는 1998년에 발표한 논문 '혼돈의 기원-세계 경제 위기의 역사'에서 "주류 경제학자들과 정부는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혜안과 통제 능력을 뽐내며 미국 경제가 호황이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누구 말이 맞는지 증명하는 데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 15일자 파이내셜 타임스는 "미 월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날들이 펼쳐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IT거품이 빠지고 미국 경기가 침체 국면을 맞자 주택가격 하락이라는 돌풍이 몰아닥쳤다. 그동안 빚을 내 너도나도 부동산 투자에 나섰던 미국인들은 이자마저 낼 수 없게 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촉발됐고 드디어 금융 지진이 터진 것이다. 주택담보증권 등 고수익상품에 올인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던 투자은행들이 줄도산하고 미국 금융시스템 파탄의 충격이 전 세계 금융시장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세계화'미국화라는 이름으로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 하던 뉴욕 월가의 신화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전통적인 상업은행들과 금융 패권을 놓고 다투던 굴지의 5대 투자은행 중 베어스턴스, 리먼브러더스, 메릴린치의 간판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된 것이다. 이것으로 끝난다면 오죽 좋으랴. 또 누가 단두대에 오르게 될지 미국 금융기관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번 미국발 금융 위기는 안전자산에 투자해온 상업은행들을 비웃기나 하듯 투자은행들이 과도한 수익률에 집착하다 실족, 부도 도미노에 처했다는 분석이다. 미국 언론들은 위기의 주범으로 '파생금융상품'을 지목했다. 선진 금융공학을 기반해 만들어진 파생상품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월가의 파생상품 규모만도 50조달러나 된다고 한다. 문제는 황금알에 눈 먼 나머지 잠재적인 위험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는 점이다. 금융기관도 감독기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게다. 워싱턴포스트는 15일 '세계 금융시장의 새 구도'라는 기사에서 파생상품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해하려면 박사 수준의 수학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다. 이렇듯 복잡하고 난해한 상품을 만들어 돈벌이를 해온 월가의 비상한 머리들이 제 덫에 걸려 엎어진 것이다.

아시아 외환위기를 정확히 예측했던 누리엘 루비니는 2006년에도 서브프라임 사태와 미국 금융 위기를 내다보면서 월가의 금융 시스템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위기의 핵심은 불안정한 시스템이었다. 시스템의 실패는 필시 금융 붕괴를 부를 것이라고 본 것이다. 부실하고 위험한 장비로 물고기를 마구 잡다 감전사하는 경우랄까. '공짜 점심은 없다'는 서양 속담이 있는 것도 이를 경계한 것이다.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말이다. '고수익=고위험'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마저 무시한 '탐욕의 머니 게임'이 빚은 결과치곤 그 파장이 너무나 크다.

내년부터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는 우리에게도 이번 사태는 큰 교훈을 남기고 있다. 체질이나 기본기를 무시하고 기교만 뽐내다 어떻게 일을 그르치는 지를 말이다. 돈 된다고 독이 든 잔까지 마시려 덤빈다면 월가 짝 나지 않으란 법 없다. 물론 금융시장의 발전과 선진화는 중요하다. 그러나 과욕은 금물이다. 분수를 넘은 욕심이 당장은 달콤한 열매를 맺을지 모르지만 그 끝은 파산이라는 쓰라린 고통임을 월가가 보여주고 있다. 가진 재주도 잘 써야 복이 굴러오지 잘못 쓰면 패가망신하는 게 인생사의 기본 아닌가. 만사 過猶不及(과유불급)이라고 했다.

徐琮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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