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월 스트리트

뉴욕이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이 된 연유는 돈에 대한 열망이 남달랐던 네덜란드인들이 건설한 식민지였기 때문이란 분석이 있다. 뉴욕의 원 지명은 뉴암스테르담이다.

이재에 밝았던 네덜란드인들은 1624년 맨해턴섬 일대를 인디언으로부터 거의 공짜로 사들였다. 네덜란드인들이 땅값으로 지불한 것은 단돈 60길더(24달러)어치의 구슬과 도끼 등이었다. 이후 뉴암스테르담은 돈에 대한 열망과 네덜란드 특유의 개방정신이 결합되면서 모피와 사탕수수, 노예무역 등으로 번영을 구가했으나 1644년 영국의 침공을 받는다.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영국인과 인디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섬 북쪽에 세운 목책(wall, 월스트리트라는 명칭은 여기서 유래한다)에 의지해 항전하려 했으나 남쪽의 절벽을 타고 들이닥친 영국에게 당하고 만다.

이때 네덜란드인들은 항전을 포기하고 총독에게 항복할 것을 종용했다. 항복을 촉구하는 시민대표단에는 총독의 동생까지 끼어 있었다. 결국 네덜란드는 수비대가 명예롭게 본국으로 돌아가는 조건으로 항복했다. 그 이유는 재산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점령 뒤 영국인들이 본 뉴암스테르담의 모습은 네덜란드인의 돈에 대한 열망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청교도혁명을 겪은 영국인들은 새 땅을 찾으면 예배당부터 지었지만 이 도시에는 예배당 하나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이 도시에서는 돈이 제일이라는 풍조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렇게 건설된 뉴욕은 192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80여년간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군림해왔다. 그랬던 뉴욕의 자리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 5대 투자은행의 하나인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월스트리트가 무참히 무너지고 있다. 이미 끝났다는 소리도 들린다.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대공황 같은 위기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겠지만 작은 경제위기는 여전히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 이유는 작은 경제위기가 주기적 혁신과 관련이 있다는 것, 즉 새로운 것이 옛것을 밀어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월스트리트의 위기는 월스트리트가 혁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 즉 새것에 밀려날 낡은 것이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보는 것도 근거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무엇이 월스트리트를 대신할 새것인지는 아직 안개에 싸여있지만.

정경훈 정치부장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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