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돈이 숨기 시작했다…충격파 실물경제로 전이

돈이 얼굴을 숨기기 시작했다.

미국발 신용위기가 우리나라에서도 금융회사는 물론 가계와 기업 등 모든 경제 주체들에게 신용경색 현상을 본격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18일에는 채권 투매가 나오면서 채권 금리가 폭등, 자금시장이 얼어붙었다.

주식시장 폭락에다 채권시장까지 대혼란에 빠지면서 금융권은 돈줄을 잠그기 시작, 기업들의 자금 확보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여 실물경제에도 먹구름이 짙어가고 있다.

◆내 펀드 어쩌죠?

미국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인해 환매나 상환을 연기하는 펀드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처음 맞는 국내 펀드투자자들의 동요가 커지고 있다.

18일 자산운용협회 공시에 따르면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관련, 상환이나 환매를 연기한다고 공시한 펀드는 13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주가연계펀드(ELF)가 우리CS자산운용 2개, 하나UBS자산운용 1개, 삼성투신운용 1개, 마이애셋자산운용 1개 등 5개며, 나머지는 아이투신운용의 채권형펀드 8개다.

우리CS자산운용은 2006년 9월 180억원 규모로 설정된 '우리투스타KH-3호 ELF'가 지난 12일 조기상환 조건을 충족시켰지만 펀드에 편입된 리먼브러더스의 주가연계증권(ELS) 때문에 상환 일정을 연기한 상태.

하나UBS자산운용은 작년 8월 50억원 규모로 설정된 '하나UBS 기업은행-삼성중공업 ELF'가 리먼브러더스 발행 ELS를 기초로 한 탓에 환매를 연기했다.

대구시내 증권사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도 법원의 결정으로 회생절차를 밟게 된 회사의 채권·채무가 동결되는 것처럼 미국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신청을 함에 따라 리먼브러더스와 관련된 투자상품도 환매가 연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장기화되면 환매나 상환을 연기하는 펀드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자산운용협회를 통해 공시되는 펀드는 공모형으로 사모형까지 감안하면 피해를 입는 펀드는 드러난 것보다 더 많을 것으로 우려된다.

또 다른 증권사 직원은 "지금까지 펀드 상품은 거래 상대방이 리먼브러더스든 미국의 다른 회사든 이에 주목하는 경우가 없었지만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가 일어나면서 유명 미국 금융회사가 잇따라 쓰러지다 보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다"며 "향후 환매 중지된 펀드 때문에 피해를 입은 고객들과 '누가 리먼브러더스와 관련된 상품을 소개시켜 줬느냐'를 놓고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리먼브러더스와 연계된 국내투자자들의 ELF 투자액을 500억원 내외로, 리먼브러더스에 노출된 증권사들의 ELS 규모는 1천55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 '공황' 상태

18일 채권시장에서 채권금리가 폭등했다. '유동성부터 확보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투매가 속출한 것이다.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35%포인트 뛰어오른 연 5.95%를 기록했다. 전날 0.11%포인트 급등한 데 이어 불과 이틀새 0.5%포인트 가까이 폭등한 것이다.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5.98%로 0.33%포인트 올랐으며,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6.13%로 0.32%포인트 상승했다.

금융위기가 예상밖으로 심각하고 이마저 장기화 조짐까지 보이자 유동성 확보 시도가 나타나면서 손해를 보고서라도 '팔겠다'는 심리가 지배적이었다.

더욱이 "증권사들이 자금 부족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증권사에는 단기자금조차 빌려주지 않으려는 현상이 나왔고, 증권사들이 채권을 앞다퉈 팔자에 나서면서 채권금리 폭등세를 키운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날 한국투자증권에 이어 굿모닝신한증권도 파산보호 신청을 한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와 관련된 채권 1천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시장의 불안감을 더 커졌다.

대구은행 정찬우 자금부장은 "서울의 자금시장이 사실상 공황상태에 빠졌다. 금리가 폭등하고 자금 조달이 안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외화는 더 심각하다. 달러 수요만 있고 공급은 없으니 환율이 급등세다"라고 했다.

◆실물 부문에 충격 전이

자금시장에 돈 경색이 찾아오면서 향후 은행권을 통한 중소기업 대출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채권시장이 얼어붙다 보니 은행들이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졌고, 엄청난 펀드 손실 때문에 시중자금이 말라 예금으로 돈이 급격히 흘러들어올 가능성도 적어 대출재원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은행들은 향후 신규 대출을 안할 방침이다.

18일 대구지역 기업들에 따르면 농협이 사실상 최근 신규대출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고, 대구은행도 '기존 대출만 관리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업은행 한 관계자는 "대구지역 모든 은행들이 신규대출을 중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 중소기업 금융지원 특화은행이라는 점을 감안해 기업은행만 신규 대출을 해주고 있다"고 했다.

특히 대구시내 은행에는 미분양 사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사들의 SOS 요청이 잇따라 들어오고 있으나 신규 자금 지원은 불가능해졌다.

신용보증기금 등의 보증서를 끊어가도 대출이 안되는 현상까지 불거졌다. 때문에 은행들이 지나치게 몸사리기에 나서고 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신용보증기금 대구경북본부 측은 "'기업은행을 제외하고는 대출이 모두 중단됐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있다. 보증서를 끊어가도 대출이 안된다는 제보에 대해서는 '금융지원애로반'을 신규 가동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추석 대구시내 백화점 경기는 좋고 반대로 대형소매점은 지난해보다 매출이 오히려 떨어지는 등 바닥 경기부터 내수가 서서히 얼어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