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끊기 전에 내가 끊기겠다…중독의 그림자 '금단현상'

▲ 알코올 중독 환자들은 격리치료를 받는 처음 일주일간은 극심한 금단현상에 시달린다.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간호사들과 자유롭게 대화할 정도면 상당히 호전된 것이다. 사진은 대구의료원 알코올병동.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알코올 중독 환자들은 격리치료를 받는 처음 일주일간은 극심한 금단현상에 시달린다.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간호사들과 자유롭게 대화할 정도면 상당히 호전된 것이다. 사진은 대구의료원 알코올병동.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속상하다며 소주 잔을 기울이는 드라마 속 주부의 모습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받아들여지고, 담배 연기 자욱한 술집에서 폭탄주를 치켜드는 아버지는 우리 시대 가장의 자화상이며,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허리가 뻐근할 정도로 컴퓨터 앞에 죽치고 앉은 자녀의 모습은 일상 속 풍경이 돼 버렸다. 무엇이라도 부여잡지 않으면 같이 미쳐버릴 것 같아 사람들은 술과 담배와 인터넷 게임을 붙잡는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절박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그런 스트레스와 속상함을 달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강도가 더해지면서 어느덧 헤어날 수 없는 단계, 즉 '중독'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뒤늦게 벼랑 끝에 선 자신을 발견한 뒤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끊어보려고 애쓰지만 무시무시한 '금단 현상'이 기다리고 있다. 심한 경우 격리치료와 약물치료까지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치료방법도 부수적 도구일 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다. 죽는 것보다 견디기 힘들다는 금단 현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지독한 불면증을 호소하는 니코틴 금단

담배 끊은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금연은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30년 넘게 담배를 피웠던 조모(52)씨는 몇해 전 금연을 결심한 뒤 이상 징후를 느꼈다. 하루 평균 한갑, 많을 때에는 세갑씩 피워대던 담배를 어느 날 갑자기 중단한 뒤 그는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까무룩 잠이 들다가도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기 다반사. 선잠을 자다 보니 악몽을 꾸는 게 잦아졌고, 그러다 보니 잠드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그런 날이 몇주씩 지속된 탓에 만성 피로증후군과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신경도 날카로워졌다. 별것도 아닌 일에 고함을 지르고, 툭하면 주위 사람과 다투는 일도 많아졌다. 아내조차 "이럴 거면 다시 담배를 피우는 게 낫겠다"고 말할 정도. 술자리에서 담배를 무는 대신 안주를 많이 먹다 보니 체중도 많이 불었다. 담배를 끊은 지 반년 만에 몸무게는 10㎏ 이상 늘었고, 신체 곳곳에서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담배를 다시 피워물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간 고생한 것이 아까워서 오기로 버텼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일년 만에 정상 몸무게를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금연 3년 만에 그는 다시 라이터를 켰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 얼마 전 다시 금연을 시작한 그는 "다시 시작하는 게 너무 두렵다"고 털어놨다.

금연으로 인한 증세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초기에는 기침이 많이 나고 가래가 끓는다. 니코틴 중독과는 무관한 증상이다. 그간 기도를 막고 호흡을 힘들게 했던 가래와 타르를 제거하기 위한 신체의 자연스런 방어과정이다. 소화장애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장 운동이 느려지기 때문인데, 변비나 아랫배가 더부룩한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갈증이 심해지고 목이나 잇몸, 혀에서 통증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불면증에 시달린다. 신경이 그만큼 날카로워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초기 1, 2주 정도는 수면제를 복용하는 것도 괜찮다고 조언한다. 몸이 스멀스멀 가려워지는 증상도 나타난다.

◆죽은 사람이 보인다는 알코올 금단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전국 12개 지역 7천900여명을 표본으로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를 한 결과를 발표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만 18세 이상, 64세 이하 성인 3천183만여명 중 무려 5.6%에 이르는 179만5천여명이 알코올 사용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 쉽게 말해 전국에서 무려 180만명이 알코올 중독이거나 중독 전 단계쯤으로 보인다는 뜻. 알코올 중독 또는 알코올 의존은 48시간 이상 술을 마시지 않으면 경련이 일어나고,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증상을 겪는 극심한 상태를 말하며, 알코올 남용자는 스스로 술 마시는 행동을 제어할 수 없고,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탓에 흔히 '필름'이 끊기는 등 업무에 자주 곤란을 겪는다.

알코올 중독환자인 전모(36)씨는 최근 전문병동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하루 평균 소주 5~10병씩을 마셨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한두병 비우던 게 이렇게 되고 말았다. 나중에는 혼자 방에 틀어박혀 술을 마셨다. 한낮에 깨어나 빈 속에 소주를 병째로 들이켰고, 밤이면 지쳐서 잠들 때까지 술을 마셔댔다. 몇달간 격리돼 약물치료까지 받은 뒤에 그는 퇴원했다. 하지만 퇴원하는 날 저녁, 그는 다시 동네 슈퍼마켓에서 소주 두 병을 사들었다. 그는 이 정도는 괜찮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대구의료원 알코올병동 김명옥 간호사는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에게서 알코올 금단현상은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가량 나타난다"며 "결코 혼자서는 치료할 수도 없고, 병동 입원까지 할 정도면 사실상 완치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알코올 금단현상은 불안에서 출발한다. 손발이 떨리고 식은땀이 흐른다. 아울러 시간, 장소, 사람 등이 헷갈리기 시작한다. 병원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 줄 모르고, 심지어 연도조차 모른다. 간호사를 옆집 아줌마로 아는 것은 다반사. 환시에 시달리기도 한다. 맨 벽을 마구 치면서 벌레를 잡는다고 하고, 자신의 몸을 심하게 긁어대면서 벌레가 기어다닌다고 호소한다. 공포를 체험하는 경우도 많다. 주로 죽은 사람, 즉 귀신을 보는 경우가 많다. 두려움에 떨다가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입원 뒤 집중 치료를 받으면 차츰 증세는 호전된다. 사람, 장소, 시간 순으로 자각이 돌아온다. 주위 사람과 자신이 있는 장소를 알지만 날짜와 시간까지 인식하려면 상당한 치료가 필요하다.

중독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용 사례는 많다. 음주 때문에 학교나 직장에 지각·결근하는 경우, 숙취와 두통을 참으며 근무하는 경우, 술에 취해 선심성 카드를 긁어대는 경우, 술로 인한 질환을 알면서 반복적으로 음주하는 경우, 술자리에서 상사에게 대들어 불리한 처우를 받는 경우 등이다. 음주 문화에 비교적 관대한 우리나라에서 흔히 허용되지만 사실상 위험 수준으로 분류된다.

◆가상과 현실을 구분 못 하는 인터넷 금단

중학교 2학년인 박은수(가명)군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우울과 불안 증세 때문에 벌써 한달 넘게 약을 먹고 있다. 이유는 인터넷 때문. 외동아들인 은수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탓에 혼자서 저녁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다소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고 인터넷에 쉽게 빠져들었다. 밤 늦게 돌아오는 부모는 아이가 별다른 말썽 없이 학교도 꼬박꼬박 잘 다니면서 그저 컴퓨터를 좋아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학교 올라오면서 성적이 바닥권임을 알게 된 아버지가 인터넷 서비스를 끊어버렸다. 여름방학 직전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은수가 친구 돈을 훔쳤다는 것. 하교 후 하루 평균 5시간 이상 PC방에서 보낸 탓에 용돈이 부족했던 은수가 친구 지갑에까지 손을 댔다는 것이다. 놀란 부모는 인터넷 중독 상담을 신청했고, 박군은 우울과 불안 증세를 보인다는 진단을 받은 뒤 병원 치료까지 받았다.

대구시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채연희 팀장은 "인터넷 중독은 단순히 게임뿐 아니라 인터넷 서핑을 습관적으로 하는 경우도 해당되며, 아직 정확한 진단 방법이 없어서 통계치에 차이가 있지만 청소년 중 1~5%가 중독상태라는 보고도 있다"고 말했다.

상담만으로 치료가 불가능할 경우 협력병원으로 보내지기도 한다. 서대구대동병원 서은란 임상심리실장은 "과거처럼 본드나 약물에 중독되는 청소년은 거의 없는 데 비해 인터넷 중독은 한달에 2, 3명꼴로 심리검사 의뢰가 들어온다"며 "특히 남학생이 80~90%를 차지할 정도로 많고, 대부분 부모나 또래 집단과 대화나 관계 형성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담센터나 병원을 찾는 경우는 나은 편이다. 치료를 거부하며 방안에 틀어박히는 '은둔족'이 될 수도 있고, 부모가 아예 상태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방치하는 경우도 꽤 많다. 게임 속에서 난무하는 폭력을 보면서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해 학교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흉기를 꺼내드는 경우도 종종 보고된다고 한다. 컴퓨터를 없애거나 인터넷을 갑자기 끊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 돌파구부터 마련해 준 뒤 차츰 인터넷을 멀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독 단계까지 이르면 대개 약물치료를 필요로 하며, 충동 조절은 2주일, 우울과 불안은 적어도 2, 3개월가량 복용해야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라도 성관계를 맺지 않으면 불안한 섹스 금단

불안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 또는 극심한 충동 때문에 강박적으로 섹스에 매달리는 것을 '섹스 중독증'이라고 부른다. 성욕 과잉증, 성적 강박증, 님포마니아(nymphomania)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르윈스키와 스캔들을 일으킨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섹스 중독증으로 진단했다. 알코올, 담배, 마약, 인터넷 중독처럼 강박증상을 보이며, 갑작스레 중단하면 금단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영화 '엑스파일(X-file)'의 멀더 역으로 유명한 배우 데이비드 듀코브니가 스스로 섹스 중독증임을 고백해 화제가 되었으며, 이탈리아 한 일간지는 강박증상협회 조사 결과를 인용해 성인 150만명이 섹스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전체인구의 약 3%에 해당하는 수치이며, 성별로는 남성 75%, 여성 25%가 이런 증세를 앓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동산의료원 비뇨기과 박철희 교수는 "성행위를 일정 기간 못하면 불안·초조·우울해서 일을 못할 지경에 이르며, 섹스에 관해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 때문에 사회생활이나 친구와의 만남도 거의 못할 정도가 될 수도 있다"며 "실제로 문제가 심각한데도 환자들이 창피해서 이를 숨기고, 외국처럼 심각한 중증 보고도 드문 편이다 보니 아직 체계적인 치료 프로그램도 없다"고 말했다.

한국성과학연구소가 밝힌 '섹스중독 자가진단법' 중에 '술자리를 하면 반드시 섹스로 끝나야 한다'는 문항도 있다. 물론 반드시 섹스 중독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만큼 위험수위가 높다는 뜻이다. 성문제 전문가들은 "룸살롱이나 단란주점에 갔을 경우 2차를 꼭 나가는 사람들은 일단 섹스 중독 여부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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