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간극장 출연후 제주도로 옮긴 박범준·장길연 부부

유목민 같은 삶,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 바람도서관의 외부와 내부 모습. 출처: 바람도서관 홈페이지 www.nomoss.net
▲ 바람도서관의 외부와 내부 모습. 출처: 바람도서관 홈페이지 www.nomoss.net

2005년 1월 KBS 2TV '인간극장'에 출연한 박범준(35)·장길연(33) 부부는 하룻밤 새 유명인이 돼 버렸다. "서로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섭외에 응했던 결과였다. 겨울 농한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했지만 그 결과는 '박장(朴張) 부부'의 삶에 크나큰 풍파를 몰고 왔다. 한가한 산골에서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던 평범한 일상이 그날 이후 깨져버렸다.

박장 부부는 이제 제주도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광양에서의 잠깐살이 후 2006년 12월 제주도 중산간 전원마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었다. '바람도서관'이라는 작은 문고형 도서관도 차렸다. 그냥 가지고 있던 책 잘 정리해 두고, 찾아오는 분들께 불편하지 않은 공간을 만들자고 시작한 일로 앞으로 '여행전문 도서관'으로 키워나갈 소중한 공간이다. 지난 3일 오후 바람도서관을 찾았다. 장씨를 기다리는 동안 박장 부부가 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정신세계원)를 읽었다. 두 사람이 펼쳐내는 '신행복론' 이야기는 재미가 쏠쏠했다. 장씨와의 인터뷰도 그랬다. 박장 부부의 삶과 꿈 이야기에 푹 빠졌다. 그 전주부터 서울 출장 중이라는 박씨와의 인터뷰는 16일 오후 전화를 통해 이뤄졌다.

◆끝없이 남하한 유목인의 삶

서울, 대전, 무주, 광양, 제주. 박장 부부의 행적은 줄곧 남쪽으로 향해 있었다. 2002년 3월 결혼 뒤 시골생활을 결심하고 사전 준비를 하겠다며 대전을 찾았을 때 그랬다. 2004년 2월 전북 무주의 한 시골집 '나무네 집'으로 터전을 옮겼을 때도 그랬다. 2006년 봄 정들었던 산골집을 뒤로한 채 향했던 곳도 남쪽인 광양이었고, 지난해 겨울 마지막으로 제주에 터를 잡았을 때도 부부는 국토의 남쪽 땅을 딛고 서 있었다.

그들은 왜 다시 남쪽으로, 제주까지 이르렀을까? 이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간극장' 출연 이후의 삶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 당시 부부의 산골생활을 담은 방송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로 인한 대가가 컸다. 장씨가 "일상이 거의 파괴됐다"라고 할 만했다. 첫방송 다음날부터 찾아오기 시작한 손님들은 무주 생활을 고달프게 했다.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데 창 밖으로 마당에 모인 사람들이 손을 흔드는 일도 있었다.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두 사람은 무주를 떠날 때도 일부러 이웃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광양으로 급작스레 거처를 옮긴 것은 방송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무네 집'은 박장 부부가 빌려서 산 집이었다. 집주인이 인도에 가 있는 2년간 임대해서 살았는데 집주인이 귀국하게 되면서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2년간 정든 산촌을 쉽게 떠날 수 있었던 데는 방송 탓이 컸다. 장씨는 "마침 방송 때문에 하도 시달려서 조금 덜 아쉬운 면은 있었다. 우리가 거기서 계속 살면 뒤늦게라도 찾아오는 분들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좀 아쉽기는 하지만 '떠나도 좋은 점이 있긴 있구나'하면서, 어떻게 보면 가볍게 떠난 셈"이라고 당시 심정을 털어놨다.

◆남쪽에서 찾은 낙원&안식처

부부가 제주까지 오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나무네 집'을 비워야 하는 결정이 촉박하게 이루어진데다 무주에서는 집이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1년 정도 기약으로 친구가 살고 있는 광양으로 발길을 틀었다. '따뜻하겠지'하는 생각으로 백운산 자락 시골 동네로 이사했다.

임시로 간 곳이었기에 부부는 다음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수많은 곳을 뒤지고 다녔다. 광양 근처 일촌 외곽이나 보성 벌교까지도 알아봤다. 경주 쪽으로 이사할 뻔도 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뭔가 일이 조금씩 틀어졌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다가 눈을 돌린 곳이 제주였다. 제주의 이 집을 발견한 뒤 부부는 하고자 하는 일과 공간구성이 너무 잘 맞아 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은퇴한 노부부가 부업 비슷하게 민박처럼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사자니 예산이 많이 초과됐다. 아쉬운 대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몇 십만원에서 몇 천만원까지 돈을 빌렸다. 집을 산 뒤에는 대문공사도 하고 공간도 꾸미는 등 부부의 손길이 더해졌다. 재작년 12월에 이사하자마자 도서관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묵을 수 있는 '바람 스테이'와 찻집도 열었다.

장씨는 "워낙 가진 것 없이 급하게 펼치다 보니까 작년 한 해 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도 "올해 들어서는 조금씩 정돈되어 가는 그런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나 부부에겐 바람도서관도 정착지는 아니다. "둘 다 체류형 여행을 좋아한다. 외국 생활도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는 아내 장씨, "제주생활에 적응이 되고 나면 무주에서와 같은 공간을 찾아 같은 삶의 형태를 다시 만들 것 같다"는 남편 박씨의 대답이 그럴싸하다. 얼굴도 닮고 마른 체형까지 닮은 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박장(拍掌)' 소리, '이보다 더 좋은 인연'이 또 어디 있을까?

◆박장 부부와의 일문일답

-무주 생활에서 얻은 것은 뭔가요?

장길연(이하 장): "저는 개인적으로 한 인간으로서 홀로 생존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의미를 두거든요. 어딘가에 홀로 놓이더라도 적어도 내 생명, 내 몸 하나는 건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시골에서의 삶은 제가 모르는 부분이고, 그게 어려울 수는 있지만 어쨌거나 새로 배운다는 거잖아요. 풀 하나에 대해서도 배우면서 '내가 나 먹을 것을 키울 수 있다'는 데 대해 대개 만족감이 있었죠. 그래서 무주 생활은 고생은 했지만 매우 재미있었어요. 무주에서의 생활은 마찬가지로 생존에 관심이 있던 남편과 날마다 캠핑을 하는 것처럼 살았던 면도 있어요. 춥고 고달픈 것도 상당히 의미 있었던 것 같아요."

-제주생활의 장·단점이 있다면?

박범준(이하 박): "일단 장점은 뭔가 의욕적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이에요. 힘든 부분은 육체적·정신적으로 피곤하다는 거고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과정인데, 집은 구했지만 그곳을 구상에 맞게 고쳐 나가고 만들어가고, 함께할 사람들도 모으고 하는 하나하나의 과정 말이에요. 작년 여름이 무척 힘들었어요. 가을 지나면서 안정을 찾았다고는 해도 그 이전(무주 생활)에 비하면 힘든 점이 있어요."

-옮겨다니는 삶이 고달프진 않나요?

박: "유목이냐, 정착이냐를 봤을 때 항상 공평하잖아요? 머물러서 얻는 것이 있고 유목해서 못 갖는 것이 있는데, 고달픔은 유목을 통해서 잃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행히 아내나 저나 즐기려고 애쓰는 편이고 실제로 즐길 면도 있고요. 그런 점에서 (시각이) 달랐다면 이런 삶이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 한 사람이 '이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뭔가 잃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고달픔은 고달픔 이상이 될 수 있어요. 상황 자체의 고달픔보다 그런 상황에서 '억울하다, 섭섭하다'하는 것이 더 힘들 것 같아요. 저도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고달픔이라 할 수 있는 부분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요?

장: "대학 시절 8년간 사귄 남자친구는 연구소 취직 후에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정적인 사람이었어요. 변화무쌍한 삶을 원하지 않았죠. '나는 날아가고 싶은데 이 사람은 한 곳에 나를 묶어 두려고 한다'는 느낌도 들고. 그런 고민이 돼서 멀어졌어요. 두 번째 남자친구가 생각하는 것도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삶의 모습하고는 달랐어요. 범준씨와는 기본적으로 아우라(aura)랄까, 그 사람이 풍기는 기본적인 분위기 같은 것에 있어서 뭔가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아요. 둘 다 첫 만남에서 어떤 스파크가 일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서로 사귀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 느낌에 신경을 쓰지는 않았지만."

-부인과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한 적 있나요?

박: "저랑 연애를 시작할 때 아내는 독신주의자였어요. 저도 어떤 면에서는 그런 걸 포기하고 시작을 했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어떻게 하다 보니까 '결혼은 아니더라도 이 사람과는 평생을 함께해야겠다'는 마음도 보이고, 결국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간에 결혼까지 하게 됐어요. 만약 대학교 2학년 때 (저를) 만났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어요. 서로 시야가 좁았다고나 할까? 그런 상황을 지나고 '저런 사람에게는 저런 장점이 있구나'하고 볼 수 있는 상황에서 만났다는 것도 '그런 게 인연이구나'했던 것 같아요. 회사에 아내가 처음 왔을 때부터 '저랑 엄청 닮은 사람이 왔다'고 소개를 받았어요. 그때는 그렇게 생각은 못하고 인상이 비슷하다고만 싶었죠. 살면서 의외로 많은 차이도 발견하지만, 분명히 닮은 부분이 있어요."

-앞으로 계획은?

장: "저희가 여기 올 때 조금 멀리 그렸던 꿈은 '대안학교' 같은 거예요. 기존의 대안학교같이 그런 부지나 시설을 가진 것은 아니고요. 둘 다 공교육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그게 구체적인 학교의 형태가 될지, 프로그램의 형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 저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먹고살기 위해 돈도 벌면서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거예요. 또 우리 스스로도 그걸 통해서 좀 성장할 수 있고 자유로워질 수 있고, 다른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해보고 싶은 것이죠. 현재는 막연한 형태로 가칭 '대안학교' '여행학교' 이런 개념인데, 그런 것을 만들어가는 매개체를 '책'과 '여행'과 '교육'이라는 세 가지 공통 코드를 가지고 만들어보려고 하는 참이죠."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박범준·장길연 부부는?

서울대와 카이스트 출신으로 잘나가던 직장에 다니던 두 사람은 2002년 3월 3일 서울 북악산 기슭의 한 전시관 뒤뜰에서 평생의 반려자가 됐다. 결혼 후 "오늘 행복하지 않다면 내일도 행복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우리는 지금 행복을 선택한다"며 훌쩍 도시라는 공간을 떠나 무주 산골로 들어갔다. 2005년 1월 방송된 '인간극장'을 통해 산골 생활이 소개되면서 '유명인 아닌 유명인'이 됐다. 현재 제주도 중산간에서 '바람도서관'과 숙소 '바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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