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와 포항을 중심으로 경북지역에 대한 대규모 국내외 투자가 잇따르고 있다. 투자금액만 따져볼 때 지난 2006년 3천78억원에서 지난해 4조2천366억원, 올 5월까지 2조5천60억원에 이른다. 특히 일본 기업은 도내 전체 외국인 투자기업 147개 중 56개를 차지한다. 아울러 외국 기업 중 절반 가까운 66개 업체가 구미에 둥지를 틀었다. 일본계 자본은 최근 들어 매년 10여개가 새로 공장을 지을 정도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를 계기로 구미공단은 활력을 되찾고 있고, 관련 기업들의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서도 굳이 구미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구미로 오는 걸까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단순하다. 시장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PDP 및 LCD 주요 부품을 판매해야 하는 일본기업들로서는 운송료 부담을 덜 수 있는 한국에서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인건비나 전기요금 등도 일본보다 저렴하다. 아사히 글라스는 LCD·PDP 유리 연매출 4천200억원 중 50% 정도를 국내에 판매하고, 50%는 해외 수출한다. 고기능성 부직포 생산업체인 도레이 새한은 2004년 투자 이후 연매출 7천200억여원 중 국내공급이 4천300억원에 달한다. 물건을 팔기 쉬운 곳에 공장을 짓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도 지방자치단체는 공장부지까지 무상으로 제공해주면서 외국기업 유치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때문에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 논란까지 벌어진다. 한 외국기업은 수백억원어치의 땅을 무상으로 제공받으며 공장 부지를 평지로 고르게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수십억원이 추가로 드는 일이지만 경북도는 당초 공단을 조성한 한국수자원공사측에 이를 부탁했고, 한꺼번에 공장용지 분양에 성공한 수자원공사가 받아들여서 비교적 쉽게 해결됐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들 법하다. 외국기업들이 수요처를 찾아서 한국에 공장을 설립하는 것이라면 굳이 외국기업 돈벌이를 위해 역차별 논란까지 벌이면서 저자세로 일관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외국기업 전용 부품단지까지 조성하면서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는 이유에 대해 김장호 경북도 투자유치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 오는 일본 기업이 굳이 구미를 선택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수도권을 선호할 수도 있다. 가만히 앉아서는 외국기업이 구미나 포항으로 오지 않는다. 선심성 행정이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외국기업들이 국내 인력들에게 지급하는 연간 인건비만 따져도 공장부지 분양가격이 떨어진다. 여기에 장기적 기술 이전효과가 있고, 관련 국내 산업의 성장도 무시할 수 없다."
◆문전박대도 감수해야 가능
투자 유치에는 정보력이 핵심이다. 업계 동향을 꾸준히 살펴 해외 공장을 신설할 의사가 있는 외국 업체를 물색해야 하고, 핵심 책임자를 만나 한국, 그것도 경북으로 오도록 설득해야 한다. 책임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수십 차례 전화를 걸고 방문해야 한번 만나줄 정도.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업체로서는 최대한의 편의를 끌어내기 위한 고도의 전략일 수도 있지만 공무원 입장에서는 피가 마르는 일이다. 수개월간 공을 들인 투자유치 정보가 자칫 외부에 새어나가면 도루묵이 될 수도 있다. 극도의 보안이 필요하다. 향후 5년간 상주 청리공단에 1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웅진그룹 유치가 그러했다. 경북도 투자유치팀 박창수 담당은 "다른 지자체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다 보니 청사 안에서도 수시로 문을 걸어잠그고 회의를 열었다"며 "투자 유치는 007작전을 방불케 한다"고 말했다.
역할 분담도 중요하다. 그저 공무원이 나서서 '좋은 땅을 줄테니 오라'는 식의 유치 전략은 '유치한 단계'다. 웅진그룹의 경우, 상주시는 출향인사와 시행사 설득을 맡았고, 경북도는 수자원공사와 영남에너지, 환경청 등과 협의해서 물과 가스 공급 여부를 타진했다. 지역 출향인사들도 총동원된다. 강석진 전 GE코리아 회장, 나응찬 신한금융지주그룹 회장 등 웅진그룹과 친분있는 CEO에게 수시로 경북도 투자를 설득해 달라고 읍소했고, 경북도지사와 구미시장은 웅진측이 귀찮을 정도로 전화를 걸었다. 3억2천500만달러 투자 규모의 엑손 모빌은 투자유치 첫 단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계약서에 담을 단어 하나까지 일일이 국제법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와서 자기측 주장대로 담기를 원했다. 한국을 마치 1970년대 후진국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했다. 공무원을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였다. 호텔에서 햄버거를 시켜먹으며 12시간 마라톤 협상을 한 것만 수차례. 결국 경북도 공무원을 보는 엑손모빌측의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떤 기업들이 왔나
구미공단의 일본 투자를 이야기할 때 아사히글라스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04년 구미 투자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후 지금까지 9억9천만달러를 투자했다. 아사히글라스가 투자한 회사만 구미공단에 4곳. 한국전기초자와 PDP유리를 제조하는 한욱테크노클라스와 아사히피디글라스한국이 있으며, 지난 4월에는 구미 4단지내 계열사인 아사히글라스화인테크노한국(AFK)에 1억5천만달러를 추가 투자했다. 세계 4대 유리 메이커 중 하나인 아사히글라스는 2004년부터 LCD 유리기판을 생산하는 AFK를 가동했다. 수입에 의존하던 LCD용 원재료를 원활히 공급받게 되며, 앞으로 기술이전 효과도 기대된다. 이밖에 구미 4단지에만 최근 GS칼텍스가 일본 최대 정유사인 신일본석유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2차전지용 탄소소재 분야에 1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으며, IT신소재를 생산하는 도레이새한, LCD 편광필름을 생산하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등 7개 일본투자기업이 진출해 있다. 구미공단 전체로 볼 때 최근까지 24개의 일본투자기업이 무려 7억2천600여만달러를 투자해놓은 상태다. 또 지난해 11월 엑손모빌이 일본 계열사를 통해 2009년까지 3억2천500만달러를 들여 구미4공단에 하이브리드자동차에 사용할 수 있는 첨단부품인 전지 분리막 생산 공장을 건설키로 했다. 이번 투자로 국내 리튬이온전지 생산업체들은 그간 수입에 의존해 온 전지분리막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게 된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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