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우리 시어머님은 우렁이각시

25년 전 남편과 결혼을 하기 위해 시어머님을 뵈러 가던 날, 개신교를 믿던 나는 독실한 불교 신자이신 시어머님께서 종교적인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어머님께서는 "내 생각엔 종교를 가진 사람이 그래도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왔을 거라 여겨지고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종교를 가진 사람이 더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네가 나하고 같은 종교를 가졌으면 더 좋겠지만 그래도 종교를 가지고 있어서 좋구나."하시면서 흔쾌히 결혼을 승낙해 주셨다. 나는 맘속으로 "참으로 현명하시고 존경할 만한 분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느낌은 변함이 없다.

시어머님은 내게 우렁이 각시요, 도깨비 방망이 같은 분이시다. 내가 일을 갖고 있어 가까이 사시는 어머님께서 집안일을 많이 도와 주신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왔을 때 깨끗이 정리된 집안과 식탁 위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보며 남편과 나는 "오늘도 우렁이각시께서 오셨다 가셨네?"하며 맛있게 먹곤 한다.

집안일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내가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이 바로 어머님이다.

"어머님, 세 놓은 집에 보일러가 고장이라는데 어떡해요?" 하고 말씀을 드리면 "알았다, 걱정 말고 너 하는 일이나 열심히 해라."하시고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딱 해결해 주신다. 언제부턴가 나는 시어머님이 안 계시면 못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집안일을 도와 주시고 일 처리를 해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이나 남편 때문에 속상해 할 때, 일이 힘들어 짜증날 때, 어머님께서는 "너는 천금보다 더 귀한 내 며느리다."라고 늘 말씀하시고 항상 내편이 되어 위로해 주시고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

3년 전 명절 때 어머님께서 "다 모였을 때 너한테 부탁 하나 하자, 네가 교회를 다니니 제사는 안 지내겠지만 내 기일이 되면 시동생이나 동서들이 좋아하는 잡채나 만두 같은 음식을 준비해서 다들 한자리에 모여 음식 나눠 먹으면서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하셨다. 내가 제사를 안 지내게 되면 형제간들이 모일 일이 적어지고 자주 만나지 못하다 보면 형제간이 멀어지게 될 것을 어머님께서는 염려하고 계시는 듯했다.

일년을 고민하고 갈등한 후에 나는 천주교로 개종키로 결심했다. 제사도 지낼 수 있고 무엇보다 남편도 함께 가기로 해 내 형편과 처지에 잘 맞다는 판단에서였다. 영세를 받은 후, 식구들이 다들 모인 자리에서 "내가 천주교로 개종을 했고 제사도 지낼 거니까 다들 꼭 와야 해"했더니 어머님께서도 동서들도 다들 좋아했다. 반평생을 믿어온 종교를 바꾸게 한 것은 바로 어머님의 큰사랑이었다. 여든을 바라보시는 어머님이 어느 날 훌쩍 내 곁을 떠나 버리실까 늘 두렵다. 집안일, 다른 일들 아무것도 안 도와주셔도 내 곁에 오래오래 계셨으면 좋으련만 제대로 며느리 노릇도 못했는데 뭐부터 해드려야 할지? 공연히 마음이 바빠진다.

남성숙(대구 북구 침산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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