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카지노 자본주의

'미샤 형, 나는 룰렛의 비결을 찾았고 그 비결로 한 번에 1만 프랑을 땄어. 다음날 또 룰렛을 했으나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그만 돈을 다 잃었어. 저녁 때 다시 비결대로 했더니 3천 프랑을 쉽게 땄지 뭐야. 이러니 어찌 내 비결을 믿지 않을 수 있겠어?'

도박 중독자였던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자금을 보내달라며 형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형은 돈을 보내줬지만 그는 이내 빈털터리가 됐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낭비벽과 도박 중독으로 늘 돈에 쪼들렸다. '죄와 벌' 등 그가 쓴 상당수 작품에는 돈이 주요 소재로 어김없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돈을 목적으로 소설을 썼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돈을 탕진한 카지노(Casino)는 '작은 집'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카자(casa)가 어원으로 르네상스 시대 귀족들이 소유했던 사교'오락용 별관을 뜻했다. 처음엔 귀족들의 사교장이었던 카지노는 곧 도박장으로 변모했다. 18∼19세기 유럽 각지에서 개설되기 시작한 카지노는 유럽 왕실의 재원 충당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20세기 초까지는 유럽이 카지노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미국이 1929년 경제 대공황 극복을 위한 정책의 하나로 네바다 주에 대규모 카지노를 육성하면서 상업적 성격의 카지노가 등장했다. 도박을 앞장서서 막아야 할 정부가 오히려 '사행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보호'장려하는 정책을 미국이 처음 시도한 것이다.

미국발 금융 위기가 전 세계경제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수학자와 물리학자까지 동원한 첨단 금융공학 기법으로 고수익 보장 파생금융상품을 내놓고 승승장구하던 미국계 투자은행들이 연쇄 도산 위기에 빠진 것이다. 네바다 주에 거대한 도박장을 개설하듯 투자은행들의 '돈 넣고 돈 먹기'식 '노름판 영업'을 무한 방치한 게 근본 원인이다. 이에 '미국 카지노 자본주의의 몰락'이란 '성급한 예언'도 나왔다.

미국 정부는 투자은행들의 부실자산 정리에 선별 구제금융을 지원할 모양이나 천문학적 재정적자에다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신뢰도 추락으로 외부자금 수혈도 여의치 않다.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남용해 달러를 마구 찍어낸다고 해도 인플레이션 위협이 기다리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미국식 첨단 금융기법을 배우겠다며 투자은행 육성에 나섰던 한국 자본주의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전철을 밟을까 두려울 따름이다.

조영창 북부본부장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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