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與黨의 한심한 定期國會운영

1981년 1월 20일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이 제40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미국의 경제는 2차대전이래 최악의 상황이었다.

전임자인 지미 카터의 잇단 失政(실정)으로 전 해의 물가상승률은 11.83%, 실업률은 7.2%로 국민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다. 당시 상·하원은 30여 년째 민주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해 레이건으로서는 이래저래 장벽이 아닐 수 없었다.

레이건은 공약한 대로 취임 직후 경제살리기 우선과 작은 정부 지향을 선언했다. 소위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취임 얼마 뒤 J.힝클리에게 총탄을 맞아 3개월간 치료하고 6월 초에야 레이거노믹스를 구체화한 법안들과 새해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큰 정부를 유지해온 민주당은 전면 반대했다.

레이건은 경제회생만이 국가의 재건도, 정권의 順航(순항)도 가능하다고 보고 경제살리기 총력전에 나섰다. 먼저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에게 충분히 설명, 단합을 기한 다음 민주당의 지도자들은 물론 거의 모든 의원들을 만나거나 전화를 걸어 통과를 당부했고 수시로 TV연설을 통해 국민에게 협조를 호소했다.

또한 모든 각료들과 참모들도 야당 의원들을 상대로 설득 공세를 폈다. 당시 민주당의 당수격인 토마스 오닐 하원의장은 레이건을 지독하게 싫어했다. 한낱 영화배우 출신에다 국정에 대한 경험과 지식도 없으며 달콤한 연설로 국민을 속여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라는 인식에다, 경제정책 역시 허구요 엉터리라고 평가절하했다.

민주당의 강경파들은 "의장직권으로 연말까지 모든 의안의 상정을 늦춰 온 국민들이 레이건의 속임수를 알게 하라"고 건의했다. 하지만 오닐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싫어하고, 또 설사 엉터리 의안들이라 해도 대통령이 제출한 이상 하루빨리 상정, 충분한 심의와 논의를 한 끝에 처리하는 게 국회의 책임이다"고 강조했다.

결과는 이해 연말까지 표결로 모든 의안들이 통과됐다. 대통령과 각료, 참모들이 대국민소통에 전력투구하고, 여야가 경제회생을 갈망하는 민의를 받들어 각기 최선을 다한 '力作(역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레이거노믹스는 그후 미국경제를 살리는 효과를 나타냈고 레이건은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미국의 재건' '對蘇(대소) 강경책'을 펴 훗날 공산체제를 붕괴시키는 발판을 마련했던 것이다.

100일간의 대장정인 정기국회 초반인 지난주, 추석 전날 여당인 한나라당은 어처구니없는 국회운영으로 국민을 실망시켰다. 국민이 기다리는 올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의 재적 과반수인 150석보다 22석이 더 많은 172석을 갖고도 우왕좌왕하는 서툰 대책으로 통과시키지 못한 것이다.

이번 추경예산안은 어떤 것인가. 油價(유가) 급등에 따른 전기·가스요금의 인상분을 정부 재정으로 보전해 주고 저소득층에 대한 유가還給(환급), 양육비보조, 농가비료대금 지원 등 그야말로 민생을 위한 예산 아닌가.

추경안은 여야가 당리당략을 떠나 진작 처리했어야 했다. 그런데 국회가 88일 만에 늑장 개원한 것도 그렇고, 여야가 어렵게 절충 끝에 예결위원회까지 간 것을 여당의 실수와 미숙으로 불발된 것이다.

예결위의 재적의원 50명 중 한나라당 의원은 29명. 결국 26명의 찬성으로 겨우 통과되었으나 한나라당이 통과 후 위원을 교체한 것은 국회법 위반이어서 무효가 된 것이다. 이날 한나라당의 경우 예결위는 물론 본회의에도 여러 명의 의원들이 개인 약속이나 지역구 일, 또는 통과되지 않을 것으로 알고 나오지 않는 한심한 실태를 드러냈다.

국회의원에게 국회회의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는가. 특히나 추경안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살리기의 사실상 첫 의안이고 이번 정기국회 운영의 첫 시험대가 아닌가. 이럼에도 원내지도부가 졸속을 범하고 의원들의 제멋대로 행동은 기강해이와 무책임을 그대로 보인 것이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 청와대와, 여당 견제와 발목 잡기에 더 열을 올린 민주당도 당연히 반성해야 할 것이다. 빗발치는 여론의 질타로 추석 후에 여야가 규모를 재조정해서 추경안을 통과시켰지만 국민들로서는 씁쓸하기만 하다.

정권을 걸고 경제를 살려야만 하는 이명박 정부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의안들은 여러 가지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내각·청와대, 그리고 여당이 대국민, 대야당에 대한 설득과 소통의 총력전을 펼쳐야 함은 두 말 할 여지가 없다.

1981년 레이건 정부와 여당인 공화당의 총력전은 훌륭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정치와 통치에 있어 언제나 쉬운 일과 공짜는 없는 법이다.

이성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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