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제갈량과 김정일의 病

김정일 有故때 中 의도 진단 필요/정부 고도의 분석'대응 전략 시급

촉나라의 제갈공명과 위 나라의 司馬仲達(사마중달)이 대군을 거느리고 대치해 있을 때다. 도무지 싸움에 나서지 않는 사마중달의 은둔에 초조해진 공명이 도발적인 서신을 적어 使者(사자)를 보냈다.

그러나 중달은 모욕적인 편지에도 웃음을 띠며 사자에게 軍事(군사)에 관한 얘기는 한마디도 않고 제갈공명의 근황에 대한 질문만 던졌다.

잠은 몇 시간이나 자며 음식은 잘 잡수시는지 지극히 일상적인 것만 지나가는 인사치레처럼 물었다.

사자는 자신의 지도자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밤늦게까지 업무를 하나하나 직접 챙기며 식사량은 하루 두 홉 정도로 근검 小食(소식)을 한다고 자랑스레 대답했다.

사자가 돌아간 뒤 중달은 장수들을 모아놓고 "적의 대장이 식사량은 적고 사무는 多忙(다망)하다. 이는 공명의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제 그의 목숨은 그다지 길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때를 기다리며 더욱더 수비전략을 굳혔다.

제갈공명 역시 사자가 돌아오자마자 맨 먼저 '중달이 무엇을 물어보더냐'는 질문부터 했다.

이미 그 무렵 오랜 전쟁에 지쳐 병이 나 있던 공명은 취침시간과 식사량을 묻더라는 보고를 듣고는 "중달이 이미 내 병을 알고 있구나"며 적의 지구전을 예측하고 자신이 죽은 후의 안전한 퇴각 전술과 사후 내부 반란자의 모반까지 예측한 비책을 준비한다.

비단 주머니에 넣어 측근에게 맡긴 비책은 그가 죽은 직후 중달의 추격전을 교묘히 따돌리고 부하장군 위연의 모반도 의표를 찌르는 묘책으로 진압시킨다.

삼국지 이야기에서 가장 뛰어난 이들 두 전략가의 지략을 보면 최근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를 둘러싸고 오가는 정치권의 갖가지 진단과 추측, 정부의 앞뒤가 엇갈리는 대응 전략엔 젖 냄새가 날 정도로 우려스럽다.

김 위원장의 와병이 이슈가 되는 핵심적 이유는 만일의 有故(유고) 때 초래될 수 있는 정치적 군사'외교적 상황변화 때문이다.

정치적 권력구조의 변화와 방향, 주변국 특히 중국의 군사 경제적 개입의 깊이와 그들의 시나리오, 그러한 변수에 따라 기획돼 있어야 할 우리 쪽의 전략 점검과 강화 논의가 중심이 돼야하는 것이다.

그러한 고도의 분석과 정책 대안 모색은 제쳐 두고 전처 아들과 후처 아들 이야기, 거기다 김 위원장 매제가 뒤를 봐주니 후계가 될 가능성이 많다 적다는 등 흥미 중심의 문고리 권력 얘기나 즐길 일이 아니란 뜻이다.

우리가 이번 와병설에서 진지하게 짚어 나가야 할 것은 그런 가십성 드라마나 양치질은 할 수 있다 따위의 쭉정이 정보조각이 아니라 앞으로 주변국, 특히 중국이 언젠가는 닥칠 상황이 왔을 때 어떤 시나리오로 북한을 변방 우호국가 내지는 동북공정 프로그램에 의한 옌볜 소수민족 자치구의 연장선으로(티베트, 위구르 같은) 도모할 속마음은 없는지에 대비한 '비단 주머니 비책'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지구촌 中華國(중화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15억 중국에 제2의 제갈량과 사마중달 같은 책략가쯤은 널려 있을 것이다.

식사량과 취침시간으로 적장의 수명을 간파했던 그들 앞에서 쪼잔스런 위원장 이복 아들들 얘기나 하고 위원장 수행 횟수에 따라 권력순위를 계산하는 얕은 수준으로는 장백산과 만주벌판을 잃었듯 북한 땅도 잃고 통일은 물건너갈 수도 있다.

이제라도 대북 정보가 맞느니, 틀리느니 국회서 싸움이나 할 시간에 중국 지도부 실력자들이 자주 먹는 음식, 즐겨 듣는 음악, 레포츠, 주로 읽는 책에서 형성될 성격, 심리, 역사관까지도 살펴 그들의 비상시 대북한 工程(공정) 방향을 예측하고 속내를 읽어내는 수준의 책략과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에겐 김 위원장의 건강 파악도 중요하지만 김 위원장이 병상에서 메모하고 있을 비단 주머니 속 사후 비책과 함께 병실 커튼 뒤에 숨어 노리고 있는 차세대 중국의 腹心(복심)을 정확히 예측 진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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