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아가(雅歌)/정희성

아, 제발 그대가 내게 입 맞춰 주었으면!*

깃털처럼 가벼이 날아가 그대의 젖가슴에 닿을 수 있다면

스완의 목 같이 늘씬한 그대 허리에 손을 얹고

건반에 뛰노는 손가락이 되어 그대를 연주할 수 있다면

오 하느님, 딱 한번 했으면!

꿈에라도

벌거벗은 이 꿈 들키지 말았으면!

* 성경 '아가'의 첫 구절

아가는 '노래 중의 노래'란 뜻. 「저문 강에 삽을 씻고」란 작품으로 1970년대의 문학적 실천에 앞장섰던 중진시인이 아가를 부른다. 이념과 수사를 말끔히 거둬내고 인간 그 자체에 질문을 던지고 있으니, '벌거벗은' 인간의 순수한 상태가 이토록 솔직하다. 그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인간은 늙는다는 사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일까. 한평생 우리나라 섬이란 섬을 다 찾아다니며 노래를 불렀던 팔순의 노시인도 이런 시를 지었다. "이 세상에 없는 여자를/ 꿈에서 안아 보고 기뻐했다/ 꿈이 시키는 대로 간음하다가/ 사람에게 들키고는/ 밤새 부끄러워 얼굴을 못 들었는데/ 날이 새어 꿈임을 알고 안심했으나/ 그녀가 없는 세상임을 알고는/ 다시 실망했다" ― 이생진 「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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