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시각·지체장애 부부 이상수·정경미씨

"눈과 몸이 불편해도 더 어려운 이웃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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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불편하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는 건 아니랍니다." 시각장애와 지체장애를 안고 있는 두 내외. 다시 장애인들과 함께 살 수 있을 만큼의 여유와 건강만 허락되길 바란다는 이들에게 '장애'라는 말이 무색해 보였다.

12년 전인 1996년. 소매치기 혐의로 징역 2년, 보호감호 7년형을 선고받아 1991년부터 감옥생활을 하던 그때. 청송보호감호소의 밤은 길었다. 의료진은 '포도막염'이라고만 했다. 두 눈은 형체를 구분하지 못했다. 발병원인도 몰랐다. 낮과 밤이 뒤바뀌는 것은 알았지만 낮도 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해 여름 두 눈은 빛을 잃었지만 온몸은 신념의 빛을 얻었다. 오감 중 하나를 잃었을 뿐 다른 능력은 올곧지 않던가. 두 눈이 먼 그해 12월 특별가석방됐다. 그리고 이 성경 구절에 생의 길을 정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장 4~5절)'

23일 오후 경북 안동 금곡동의 한 병원에서 만난 이상수(56)씨는 부인 정경미(44·여)씨의 전동휠체어를 잡고 밝게 웃고 있었다. "날이 좀 덜 덥네요"라며 껌뻑이는 이씨의 두 눈은 초점이 없었고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나온 갈비탕을 어렵잖게 먹던 이씨는 "밥먹는 것쯤이야"라며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부인 정씨가 반찬의 위치를 알려주면 남편 이씨는 음식을 집었다. 더듬더듬 발음하는 부인 정씨의 말에 남편 이씨의 젓가락도 더듬더듬. 하지만 남편은 부인의 말이 끝나기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리고 또 웃어보였다.

이씨가 정씨와 만난 건 1997년. 장애인시설에서였다. 시각장애를 안고 있던 이씨는 성경 공부를 위해, 지체장애를 안고 있던 정씨는 봉사활동을 위해서 시설에 오게 됐다. 시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의 만남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족했다. 이후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공중파TV를 통해 두어차례 소개됐다. 11살짜리 딸아이의 부모로서, 장애인 선교회의 전도사 부부로서, 또 장애인으로서 이들의 모습은 장애가 없는 뭇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부부의 얼굴에는 그늘이 졌다. "어려운 일 때문에 언론에 나가긴 처음이지만 지금처럼 기도가 필요한 적도 없는 것 같다"며 부부는 마음 고생을 털어놨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받는 정부의 생계지원비 77만4천원과 26만원의 장애수당. 도합 103만여원의 생활비가 전부지만 요즘 들어서는 아예 여유가 없다.

'예수사랑 장애인 선교회'라는 이름으로 장애인들과 공동체 삶을 살아왔는데 함께 생활하던 한 여성이 부부의 신용카드와 현금카드를 이용해 600만원가량을 대출받아 잠적해버렸기 때문이다. 생활비 때문에 부부가 대출한 돈까지 합하면 빚이 800만원을 넘는다. 부부는 돈을 잃은 어려움보다 사람을 잃은 아픔에 가슴 한 구석이 휑하다고 했다.

게다가 이씨는 지금 왼쪽 다리에 감각이 거의 없다고 했다. '경추후종인대골화증'. 목뼈를 연결해주는 인대가 뼈처럼 굳으면서 척수를 눌러 신경의 원활한 활동을 방해, 팔다리가 저리고 심지어 마비로 이어질 수도 있는 병이었다. 수술밖에 방법이 없다는 게 의료진의 판단이었다.

이들에게 재산이 없는 건 아니었다. 140㎡(42평 남짓)의 장애인 선교회 공간이 있다. 병원에서 멀지 않은 이곳은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쉽게끔 모든 시설들을 개조해 놓았다. 하지만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내놓더라도 쉽게 팔릴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이곳은 뜻있는 이로부터 기증받은 것이었다. "그곳은 저희 것이 아닙니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보이는 부부. 오갈 데 없는 장애인들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주는 곳이라고 했다.

"눈이 불편하고 몸이 불편하지만, 더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라고 주신 생입니다. 지금의 병마도, 어려움도 그래서 이겨내야합니다. 많이들 기도해주세요." 이들에겐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도움이 더 필요해 보였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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