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가을 드라이브

단양~영월 59번 국도.595번 지방도

청명한 가을하늘과 유유히 흐르는 강물, 벼이삭이 익어가는 들녘의 가을풍경을 눈망울 가득 담은 채 저 멀리서 산자락을 돌아 숨어드는 길의 유혹에 따라 달리는 드라이빙은 한없이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을 선사한다. 게다가 그 길을 달리는 차가 지금 내가 탄 차뿐이라면 더욱 근사한 일이다.

충북 단양군과 강원 영월군을 잇는 59번국도와 사이길인 595번지방도는 가을 드라이브 코스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곳으로, 강변국도를 따라 남한강과 소백산 자락이 빚어내는 풍경들이 멈춤 없이 달리고 싶도록 만든다.

#가을의 풍경 속으로 출발

남한강 상류 물길이 에둘러 흐르는 단양, 그 강물을 가로지르는 고수대교에서 드라이브 길은 시작된다. 자줏빛 팬지가 난간을 곱게 장식하고 있는 다리를 지나 왼편 산허리로 접어들면 59번국도가 영월까지 이어진다. 길이는 100리가 조금 넘는 길(약 43~45km). 물리적인 시간 계산으로는 한 시간 남짓한 거리지만 실제로 달려보면 강물에 비친 가을의 모습과 소백산 준령의 산세와 강변의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차의 속도는 자꾸 더뎌진다.

가파른 길의 초입, 고수재를 넘자 고갯마루에서 본 산봉우리는 더욱 높아졌고 하늘은 더욱 가까워졌다. 아래로는 맑은 남한강 상류가 흐르고 가을걷이를 앞둔 산간들녘은 막바지 햇살을 받아들이기에 여념이 없다. 강과 들녘, 촌락과 소백산 자락을 길동무 삼아 달리는 59번국도는 보기만 해도 살가운 정이 솟는 산촌의 한적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강변길을 따라, 산굽이를 돌아들 때마다 나타나는 새로운 풍경들은 운전대만 잡으면 조급함이 앞서는 운전자의 마음을 느긋하게 붙잡아 둔다. 빼어난 물의 경치와 길의 흐름, 주변풍광이 그만큼 신선해서 자주 차를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이왕 나선 나들이길이라면 영월까지의 도착시간을 정하는 않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

#드라이브의 여유

59번국도를 달린 지 20여분. 소백산맥에서 떨어져 나온 외딴 산자락에 그림 같은 집들이 오롯이 가을햇살을 맞고 있다. 단양군 가곡면 가대리 펜션지구이다. 지난 여름 한 차례의 피서객들이 놀다간 마을은 예쁜 외양과는 달리 적막감 마저 돈다. 가대리 맞은편 도로변 노점상 앞에 차를 멈췄다.

감자부침을 주문한 후 펜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길손에게 감자를 강판에 갈던 노점상 여주인이 대뜸 "펜션 주인들은 대부분 서울사람"이라고 먼저 말을 건넨다. 자신은 옥수수 수확철인 이맘 때 두어 달만 길가에서 이렇게 장사를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자연스레 길손과 노점상사이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다. 혀가 몹시 짧은 듯한 그녀의 말투는 처음엔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도 말동무가 그리웠던지 그녀는 이것저것 말을 건넨다.

간장 한 종지와 내놓은 두툼한 감자부침은 담백하면서 구수하다. 노점상 포장 뒤편 산에서 청량한 산들바람이 불어 살갗을 스친다. 상쾌한 기분이 온 몸에 퍼지는 여유로움에 푹 빠져본다.

#단풍이 잦아드는 보밭재

59번국도 향산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했다. 이번 드라이브 코스의 백미인 595번지방도를 달리기 위해서이다. 이제부터는 낮은 자동차의 엔진 음과 길 양편으로 풀벌레 소리를 벗 삼아 달려야 한다. 단양과 영월을 잇는 옛길은 인적마저 드문 산길이다.

멀리 산봉우리 사이로 간간히 얼굴은 내비치는 파란 가을하늘엔 흰 구름이 그려내는 갖은 형상들이 연출된다. 새의 솜털 같은 구름부터 굴뚝에서 솟는 연기 모습까지. 마음은 잃어버렸던 동심의 세계를 넘나든다.

구절양장의 산길. 그 중심에 있는 보밭재(해발 560m)에 이르자 나무로 지은 쉼터가 눈에 띈다. 쉼터 아래로 첩첩산중의 면모와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압권이다. 하늘과 산 능성이, 길이 연출하는 풍광은 한 폭의 수채화에 버금간다. 절벽 괴석을 타고 빽빽이 자란 소나무 숲은 어느 산수화에서 봄직한 듯 낯이 익다. 가을은 이렇게 남몰래 깊은 산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다.

용수철처럼 굴곡이 심한 보밭재를 내려오면 다시 남한강을 만나게 된다. 맑은 물너울과 비취빛 강물이 짙어갈수록 영월은 가까워질 터이다. 길의 끝자락에 이를 즈음엔 천태종의 본산 구인사와 온달산성을 만나게 된다.

◇가는 길

단양~영월 간 59번국도와 595번지방도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북단양IC에서 빠져 단양읍내를 지나면 고수대교가 나온다. 고수대교를 통과, 왼쪽의 고수재로 접어들면 59번국도로 이어진다. 595번지방도는 국도를 달리다 향산삼거리가 나오면 바로 우회전한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먹을거리

강원도에서 많이 나는 감자를 이용한 감자부침과 감자떡은 이 지역을 여행할 때 한번쯤은 맛볼 먹을거리이다. 대개 감자부침은 즉석에서 큼직한 감자를 갈고 여기에 밀가루 두어 숟가락을 섞어 팬에 지져 내는데 부추나 매운 고추 등을 곁들인다. 금방 지져낸 감자부침은 특유의 구수함이 있어 지역 별미로 통한다.

감자떡은 감자가루와 고구마전분을 섞어 송편모양으로 빚어낸다. 백년초·쑥·도토리·호박 등으로 다양한 색을 내기도 한다. 감자떡의 속은 주로 녹두가루에 설탕과 소금으로 단맛을 첨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감자부침과 감자떡은 드라이브의 종착지인 영월 장릉(노산군 묘) 앞 식당가에서 맛을 볼 수 있다.

▩인근 볼거리

△중앙고속도로 단양 휴게소 뒤편 신라적성비와 적성산성=신라적성비는 삼국시대 신라 진흥왕대에 죽령을 넘어 단양 일대 고구려 영토를 차지한 후 이곳의 백성들을 선무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국경개척을 도운 사람의 이름과 공을 치하하며 장차 이런 사람들에게 포상을 내리겠다는 내용의 글귀가 적혀 있다.

적성산성은 545~550년 경 세워진 산성으로 성벽의 일부가 남아 있다. 성곽에 오르면 북쪽으로 남한강이 흐르고 지리적으로 가파른 절벽을 최대한 활용해 축성됐다. 신라시대 성쌓기 기술의 중요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단양의 온달동굴=단양은 지형상 동굴이 많다. 영춘면 하리의 온달동굴은 온달산성이 있는 성산 기슭 지하에 있다. 약 2억4천만년전에 형성된 동굴로 주굴과 지굴길이 약 800m에 1,2,3층으로 구분된 천연동굴이다.

△새밭계곡=단양 가곡면 어의곡리에 위치하며 소백산 깊은 산골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모여 냇가를 이룬 유원지로 산천어가 서식하며 주변 천연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천혜의 경치를 자랑한다.

△영월장릉=드라이브 코스의 종착지에 있는 장릉은 조선 6대왕 단종의 능으로 역대 임금의 릉 중 지방에 모셔진 유일한 왕릉이다.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위 32인, 조사위 186위, 환관군노위 44인, 여인위 6인을 합한 268인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을 비롯해 엄홍도 정려각, 제물을 올리는 배위청, 중중 36년 영월군수이던 박충원이 노산묘를 찾아 재를 지낸 일을 기록한 낙석비각 등이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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