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커피의 비밀]이탈리아人과 커피

17세기 초반 베네치아와 마르세이유에 커피가 처음으로 소개됐지만 커피생두를 들여온 곳은 베네치아였다. 유럽대륙이 아직 봉건 체제 하에 있을 때 베네치아는 이미 상업과 학문'예술의 찬란한 번영을 독자적으로 누리고 있었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사교와 향락이 판치던 '베네치아의 향연'에 커피가 초대된 것이다. 1645년 베네치아에서 유럽 최초의 카페 '보테자 델 카페'가 문을 열었고 1600년대 말경에는 여러 카페들이 성업했다.

1720년 베네치아에서 가장 번화한 산 마르코광장에 문을 연 '카페 플로리안'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카페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로 손꼽힌다.

라틴어로 '꽃다운'이라는 의미의 상호처럼 다른 카페와 구별되는 아름다운 실내로 문을 열 때부터 화제를 뿌리며 손님들로 붐벼댔다. 괴테'루소'쇼팽'모네'나폴레옹'스탕달'바그너'니체 등의 명사들이 즐겨 찾았고, 이들이 만들어낸 일화들로 인해 더욱 유명해졌다. 바람둥이의 대명사 카사노바가 플로리안의 단골이었던 까닭은 여성의 출입을 허용한 최초의 카페였던 이곳에서 '작업'을 걸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플로리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문전성시를 이뤘고, 이후 산마르코광장과 그 주변에 까페촌을 형성하는 시초가 됐다. 초기 베네치아의 카페에서는 도박이 성행하고 축제와 향연이 이어졌다. 베네치아가 커피문화의 꽃망울을 터뜨릴 무렵 북동부지역 파도바에서는'카페 페드로치'가 문을 열었다. 로마 교황청의 부정부패와 중세귀족의 몰락 와중에 커피가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로마에도 전파됐다.

물론 이전에 동방의 여행자들로부터 커피가 소개되긴 했지만 '카페 델 그레코'가 로마에 문을 연 것은 베네치아의 영향이었다. '그리스인이 운영하는 카페'라는 뜻의 그레코에는 멘델스존'로세티'리스트'토스카니니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로마인들이 좋아했던 당시의 카페는 '카페 델 베네치아노'였다.

내부는 대리석에다 반짝이는 거울과 유리, 현란한 조명 등으로 치장하고 벽은 예술작품을 걸어 장식했다. 식기류는 순은 또는 동방에서 수입해온 도자기를 사용했다. 손님은 문화예술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성직자'환전상'도박꾼'매춘중개인'귀부인 등으로 다양했으며 때론 추기경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여러 나라를 돌며 물건을 파는 보따리 행상도 가세했다.

18,19세기에 걸치면서 다른 도시에도 많은 카페가 들어섰는데, 가장 많았던 곳은 피렌체였다.

피렌체의 카페에서는 손님을 위해 테이블에 신문을 비치하고, 웨이터들은 산뜻한 옷차림으로 손님들의 취향에 맞춰 서비스를 했다. 중산층들이 주로 드나들면서 예의와 절도를 지켰고, 이탈리아인의 낭만이 충만해 있었다. 커피값도 쌌다.

아침이면 카페에서 식사를 하는 가족들을 볼 수 있었고, 밤이면 연극 시작 전이나 끝난 후 사람들이 몰려 분위기는 활기가 넘쳐났다. 귀족들은 마차를 카페 앞에 세워놓고 하인에게 커피와 과자를 사오도록 하면서 체면을 지키려 했다. 당시 카페는 상하 계층에 상관없이 모두가 고객이었고, 누구나 커피 한 잔 값이면 하루종일 지낼수 있었던 평등한 공간이었다.

김영중(영남대사회교육원 커피바리스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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