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피플&피플]노래하는 한의사 이제헌원장

'이젠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 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언젠가는 우리 모두….'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가 기타선율을 타고 감미롭게 흐른다. 가수 못지않은 미성(美聲)에 곡 사이사이 수준급의 휘파람이 보태지자 진료실 안은 순간 늦가을 낙엽이 뒹구는 덕수궁 돌담길로 둔갑되는 착각에 빠져든다.

노래하는 한의사 이제헌(45'경화당한의원) 원장. 그는 개원 이후 16년째 환자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진료에 바쁠 때면 FM라디오를 틀어놓는다. 주로 노래와 함께 세상사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김창완, 이문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다.

"한의학에서는 몸에 병이 생기기 전 마음에 먼저 병이 생기는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마음을 치유하면 몸에 생긴 병은 자연히 낫게 되지 않겠어요. 저에게 음악은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또 다른 침이자 뜸이며 약인 셈이죠."

이 원장은 환자들과 될 수 있으면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음악치료에 주목하게 된 것도 개원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찾아온 할머니 환자가 단초가 됐다. 평생을 시부모와 남편 시집살이로 고생했던 환자의 이야기를 30여분 듣던 중 문득 측은한 마음에 환자를 위로하고 싶어 기타로 영화 서편제에 나오는 '천년학'을 들려주게 됐다.

음악을 듣던 환자는 그날 베개를 흥건히 적실 정도로 눈물을 흘리고 돌아갔고 이튿날 다시 찾은 환자는 병세가 아주 호전된 상태가 되어 있더라는 것. 이때부터 그는 음악이 주는 치료효과에 주목하게 됐고 진료 틈틈이 기타, 하모니카, 단소를 불며 아픈 환자들을 위로하게 됐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원장이 연주하는 세 가지 악기는 모두 독학으로 익혔다는 점이다. 고향이 의성 도리원인 이 원장은 초교 3학년 때부터 형과 누나들과 대구에서 자취를 했다. 그러던 중 초교 6학년 때 우연히 라디오 프로그램 '세월 따라 노래 따라'에서 흘러나오는 송창식의 노래에 감명 받아 아버지를 졸라 기타를 샀다. 그리곤 혼자서 악보를 보며 연습을 했고 한 1년쯤 지나자 기타를 치며 노래도 부를 수 있게 됐다. 또 대학가요제에서 기타와 하모니카를 함께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는 두 악기를 접목해 연습하기도 했다. 한의대 재학 시절엔 국악기인 단소도 잡았다.

가부좌를 튼 채 그가 부는 청성곡(요천순일지곡)과 영산회상곡은 무엇보다 환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에 적당하다. 웬만한 내공이 아니면 불기 힘든 청성곡의 애잔한 농연자락이 환자의 마음에 공명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제게 작은 꿈이 하나 있다면 진료실 안에 작은 무대공간을 만들어 언제 어느 때라도 아픈 환자들을 위한 콘서트를 자주 여는 겁니다."

이 원장이 기타로 연주할 수 있는 곡목은 대략 100여곡. 그가 가려 뽑은 노래가사와 기타코드가 적인 노트만도 8권이다. 올 초엔 한국연예인협회에서 가수 자격증도 받았다.

"노래를 할 때면 항상 병의 괴로움에서 헤어나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뿐입니다."

그 때문이지는 몰라도 그의 노래와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의 때가 한 꺼풀씩 벗겨지는 느낌이 든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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