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가를 이루다] 수입품 판매 15년 정명희 점장

#1. 얼마 전 홍콩을 방문했다가 겪은 일 하나. 밤시간에 침사추이를 들른 후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가는 길에 호객꾼들을 만났다. 관광객들을 끈질기에 따라붙은 호객꾼들은 어눌한 한국어로 "짝퉁 있어요"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먼 이국에서 우리말을 들은 반가움보다는 "얼마나 한국 사람들이 짝퉁을 좋아했으면 한국말로 호객을 할까"란 씁쓸함이 몰려왔다. 중국 주하이에서 마카오로 넘어오는 길에서도 '짝퉁'이란 우리말을 쏟아내는 호객꾼들을 만난 적이 있다.

#2. 지하철을 타고 출근 하는 길. 앞자리에 앉은 20대 여성과 교복 차림의 고교생이 눈길을 끈다. 그들의 외모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 안고 있는 핸드백과 고교생이 맨 허리띠 때문이다. 영문자 두 개로 만든 이니셜과 독특한 갈색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L사의 핸드백과 허리띠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 것. 그들이 안고 있거나 맨 허리띠가 진품인지, 아니면 '짝퉁'인지 잠깐 동안 궁금해졌다.

최근 10년 사이 우리 사회를 상징하는 단어가 여럿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명품(名品)이 아닐까 싶다.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작품'이라는 사전적 의미보다도 명품은 '고가의 수입 외제품'을 일컫는 말로 더 피부에 와닿는다. '명품=고가 외제품'이란 등식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지만 명품하면 곧바로 외제품을 떠올리는 게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명품의 대중화'도 빼놓을 수 없는 흐름. 태어나자마자 100만원이 훌쩍 넘는 고가의 외제 유모차를 타는 아이들이 적지 않고,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핸드백과 옷, 귀금속을 구입하는 여성들도 느는 추세다. 그 덕분에 10여년 전 3~5%에 머물던 백화점의 매출액 중 명품의 비율은 두자릿수로 껑충 뛰었다. 비싼 가격 때문에 명품을 구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고객으로 하는 명품을 모방한 가짜 상품, 이른바 '짝퉁'이 활개를 치는 것도 명품 신드롬이 낳은 또다른 모습이다.

이번 주 '일가를 이루다'에선 이래저래 관심이 많은 명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이탈리아 브랜드인 '에트로'정명희(35'여) 동아쇼핑 점장을 만났다. 30대 중반의 나이지만 정 점장은 15년 이상 수입 고가브랜드 제품 판매에 종사해온 주인공. 20살 때 대백프라자에서 일본 '겐조' 판매사원으로 시작해 롯데백화점 대구점 '디올'을 거쳐 2006년부터 동아쇼핑 에트로 점장으로 일하고 있다. "스무살 때 대백프라자에서 국내 브랜드 매장의 아르바이트 사원으로 일했는데 겐조 매니저가 저를 눈여겨 보고 스카웃하셨지요. 제가 일하는 게 성실하게 보였고, 인상이 좋아보여 뽑았다는 것이 그분의 말씀이셨어요."(웃음)

매출액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다른 수입 브랜드 매장들과 달리 정 점장이 맡고 있는 동아쇼핑 에트로점 매출은 매년 30,40%의 신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하루 매출 1억원을 기록, 주위로부터 놀라움과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매출신장에서 1등상을 받았으며, 전국 24개 에트로 점포 가운데 동아쇼핑점은 정 점장 부임 후 상위권으로 올라섰다. "매출이 많이 늘어난 데에 특별한 비결이 있지는 않아요. 다만 매장을 찾은 고객들에게 친근함을 드리려 노력하고 있어요. 저희 매장에는 40~60대 여성 고객님들이 많이 찾으시는데 그분들에게 딸과 며느리, 또는 동생처럼 친근함을 느끼실 수 있도록 나름대로 애를 씁니다." 무엇보다 고객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게 정 점장의 귀띔. "며느리가 사온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겉으로 내색하기 힘들다는 시어머니의 하소연, 변호사가 된 아들을 자랑하는 어머니의 이야기 등 고객들이 털어놓으시는 얘기를 건성으로 듣지 않고 같이 공감하며 맞장구를 쳐드리면 정말로 좋아하세요. 고객과 판매직원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정을 나누는 게 중요하지요." 정 점장과 인연을 맺어 단골이 되거나, 친구 또는 친척들을 매장에 데려와 물건을 사도록 주선하는 고마운 고객들도 있다.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니 만큼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적지 않은 편. "얄미운 고객도 없지 않아요.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핸드백과 비교하기 위해 매장에서 제품을 구입했다 뒤늦게 반품하는 고객도 있고, 고리 하나가 빠졌다는 이유로 '무슨 명품이 이러느냐'며 강하게 항의하는 경우도 있지요. 하지만 모든 분들의 저의 고객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일을 잘 처리해 드립니다."

15년 가량 수입 브랜드 제품을 판매한 정 점장으로부터 전해들은 대구 고객들의 구매 패턴도 사뭇 흥미롭다. "서울 경우에는 요즘 들어 브랜드가 잘 드러나지 않는 제품을 선호한다고 하지만 대구 고객들은 그렇지 않아요. 한눈에 보더라도 그 브랜드를 잘 나타내주는 제품이 인기가 있죠." 유명 브랜드를 통해 다른 사람과 차별화하고 싶은 마음 때문으로 풀이되는 대목. 정 점장은 "예전에는 특정 브랜드를 고집하는 고객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하는 고객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브랜드 간에 고객들이 혼재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했다. 홀로 매장을 찾기 보단 친구들과 같이 오며, 2, 3차례 매장을 찾은 후 제품을 사고, 한꺼번에 여러 제품을 사지 않고 단품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정 점장의 설명.

"저희 제품의 경우 여성을 기준으로 투피스'핸드백'구두'블라우스'반지'귀고리'헤어핀 등을 구입하는 데 중간 가격대로 하더라도 모두 500여만원이 들지요. 어떤 경우엔 1천만원이 훌쩍 넘습니다. 누구나 다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게 바로 수입 고가 브랜드죠." 때문에 비싼 수입 브랜드를 구입할 때엔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정 점장은 강조했다.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제품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을 갖추는 게 중요하지요. 고가 제품을 걸쳤다지만 스타일에 맞지 않아 어울리지 않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자신의 스타일과 사회적 지위 등에 맞는 제품을 구매하는 게 현명하지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올 무렵 정 점장으로부터 고가 브랜드 시장도 "대구에선 찬바람이 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기가 좋지 않아 대구에서는 전년도 매출을 유지만해도 성공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지요. 그러나 울산 경우에는 매출이 매년 두배 이상 늘어나는 매장들이 수두룩하지요. 대구 경제가 좋아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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