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수에서 잘 나가는 웨딩업체 CEO로…김태욱

목소리를 잃었다. 노래는커녕 한 음절씩 토막내 말하기도 힘겨웠다. 20년간 음악을 꿈꾸고 노래가 삶이던 사람이 목소리를 잃었을 때의 절망감은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극한의 상실감이었다. 목소리를 잃은 시간은 1998년부터 2003년까지 6년. 그동안 그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그가 세운 직원 15명의 작은 벤처기업은 현재 직원 수 150여명을 헤아린다. 한 해 찾는 손님도 150쌍에서 1만5천쌍으로 100배가 됐다. EBS 'CEO 특강'에도 연예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출연했다.

김태욱(39) 아이웨딩네트웍스 대표이사의 얘기다. 많은 이들은 그를 톱스타 채시라를 아내로 맞은 '행운아'로 더 기억한다. '개꿈' '그래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담백하라' 등 히트곡을 낸 대구 출신 가수라고 기억하는 이들은 반의 반쯤 될 거다. 그가 절망의 시기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연예인 출신 CEO로서 성공 비결은 뭔지 궁금했다. 솔직히 미녀 톱스타와 함께 사는 기분은 어떤지가 더 궁금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아이웨딩네트웍스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비틀즈와 스티브 잡스

-가수의 꿈, 언제부터 꾸셨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연히 AFKN을 틀었는데 비틀즈의 공연을 봤어요. 그 순간 머릿속이 진공상태가 되더라고요. '아, 저거야!' 남들보다 일찍 꿈을 찾은 거죠. 그래서 저는 저를 소개할 때 '학창시절에 다른 친구들이 공부 열심히 할 때 저는 노래만 했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소개를 해요."

-예전부터 사업에 관심이 있었나요?

"중3 때부터 대구에서 록밴드를 했는데요. 록밴드도 기업하고 비슷해요. 독특하고 개성 강한 구성원들을 다독이며 리더를 한다는 게 굉장한 내공이 필요하거든요. 마케팅, 스카우트, 협찬, 티켓 판매까지 직접 다 했었요. 기질이 있었던 거죠."

-사업에는 어떻게 뛰어들게 된 겁니까?

"목소리를 잃으면서 완전히 꿈을 잃었어요. 그 충격 때문에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렸어요. 아마 아내가 없었다면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겠죠. 그러다 1999년 벤처 바람이 불 때 스티브 잡스(미국 컴퓨터회사인 애플의 CEO)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아티스트 같은 카리스마와 창의력이 아주 매력적이더라고요. 결혼 준비를 하면서 웨딩시장을 일일이 접해 보니 시장은 방대한데 고무줄 가격에 서비스 신뢰도가 엉망인 거예요. 그래서 IT기술과 웨딩산업을 세계 최초로 결합해서 제대로 된 유통구조를 만들어보자고 시작했죠."

◆산전수전, 공중전

-사업 시작하는데 재정적인 어려움은 없었나요?

"당시 IT바람이 불 때라서 투자받기가 쉬웠어요. 11억원을 투자받아 홍보이사로 시작을 했어요. 사업의 기본원칙은 경쟁력 있는 사업을 경쟁력 있는 가격과 서비스로 전달한다는 겁니다. 2005년까지 고생을 엄청했고 2006년이 되니까 본 궤도에 오르더군요.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어요."

-어떤 산전수전을 겪으셨기에?

"제가 무대 위에서 노래할 때나 대접받던 사람이지 사업한다는데 누가 봐 주나요. 완전히 찬밥이었죠. 업체들과 신뢰를 쌓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목소리도 안 나오는 상태에서 설득하는데 얼마나 고생을 했겠습니까. 일일이 글로 써서 설명하고. 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제가 한 달에 이틀은 잠을 못 잤어요. 월급날 전날 하고 업체에 결제하는 날. 그래도 제가 9년 동안 단 한 번도 월급을 안 주거나 늦게 준 적이 없었어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저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감'이(그는 '감'을 '메사끼'라고 표현했다. 메사끼는 한 발 앞서 주식을 팔거나 사는 등 주가 흐름을 재빨리 파악하는 감을 뜻하는 증권가 은어다.) 있었거든요. "

-안재환씨의 죽음으로 인해 연예인 사업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졌는데요. 왜 사업으로 성공하는 연예인이 많지 않을까요?

"스타들이 하루아침에 사업가가 되는 걸 보면 대부분 '명함용'이에요. 사실 연예인 활동 다하면서 사업을 하면 성공하기 힘들어요. 시간이 모자라요. 연예인들은 어디를 가든 자신이 돋보여야 되고, 누군가 자신을 알아줬으면 하잖아요. 그런데 사업을 하면 이걸 완전히 버려야 되거든요. 고객의 기대치는 높은데 전문성은 떨어지는 것도 문제죠. 사실 안재환씨도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사람들은 연예인이 사업을 하면 굉장히 유리하다고 생각하지만 엄청난 핸디캡이거든요. 같은 식당을 해도 맛이나 서비스, 가격 면에서 사람들의 기대치가 훨씬 높아요. 그걸 받쳐 주지 못하면 한방에 허물어지죠."

◆아내 채시라는 평범한 사람

-결혼 당시, 당대 톱스타였던 채시라씨에 비해 인지도가 없었잖아요. 열등감은 없었나요?

"아내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가까워졌어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고, 어, 어 하다가 연애하고 결혼을 했어요. 결혼 전에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딱 결혼 발표를 하고 나니까 확 느낌이 오는 거예요. 이게 현실이구나.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관심이고 부러움이었는데 저는 그게 '나를 시기한다'고 해석한 거예요. 신혼여행 갈 때까지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죠. 제가 맷집이 약했으면 도망가거나 틀어졌을 텐데 무식함이랄까, 위축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둘은 결속력이 더 강해졌죠."

-결혼 이후에 구설에 오르는 일이 거의 없었죠?

"연예인들 중 99.999%가 끼로 넘치고 0.001%가 보편적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채시라씨예요. 튀거나 전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요. 집에서는 '저 사람이 배우인가' 싶을 정도로 평범해요. 그런데 큐사인이 들어오면 '저 사람이 내 아내인가' 할 정도로 배역에 빠져요. 연예인이라기보다는 아티스트 같은 기질의 사람이죠.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에요. 제가 오히려 '제발 사람들 의식 좀 해라'고 안달하는 편이고. 아내는 '그런 것 신경쓰면 피곤해서 못 산다'는 주의이고."

-아직 많은 사람들이 김태욱씨를 두고 사업가보다는 '채시라 남편'으로 기억하는데 기분이 상하진 않으세요?

"결혼한 지 벌써 10년이 다 됐는데요 뭐. 제가 만약 가수나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면 신경 쓰일수도 있겠지만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는 사람들이 저를 기억하는데 도움이 돼서 좋아요. 뭐 어때. 가족 중에 누가 탁월한 사람이 있으면 좋잖아요."

-부부싸움은 자주 하는 편이세요?

"거의 안 해요. 제 성격이 화를 막 내고는 빨리 풀어야 해요. 그래서 제가 잘했든 잘못했든 '잘못 했으니까 풀어' 그래요. 아내도 바로 풀어주고. 채시라씨는 생활습관도 아주 FM이죠. 오전 7시면 일어나서 운동하고 애들 학교 보내고 자기 일하고. 사업이 힘들 때도 저한테 아무 소리 안 했어요. 아내는 저에 대한 믿음이 되게 강해요. 결혼할 때 '김태욱이 엄청난 갑부라서 채시라가 시집 갔다'는 말도 많았잖아요. 그런데 사실 저는 집을 뛰쳐나온 이후로 한 번도 부모님의 지원을 안 받았어요. 연애할 때도 제가 한창 앨범 제작하고 녹음실 운영하느라 정말 열심히 살았거든요."

◆난 여전히 꿈을 꾼다

-록커 출신인데, 음악을 가려서 듣는 편이세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죠. 1992년쯤 가수 최백호씨가 앨범을 냈어요. 당시 같은 소속사 선배님인데 앨범을 주시더라고요. 무슨 트로트 앨범 같아서 '선배님 돈이 급해요? 뭐 이런 걸 하고 그래요?'하고 들이댔어요. 선배님은 피식 웃고 마시던데. 십수년이 지나서 어느 날 술 한잔하고 집에 가는데 라디오에서 끝내주는 음악이 나와요. 아뿔사!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예요. 예전의 바로 그 노래. 최백호씨를 찾아가서 정식으로 음악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고 진심으로 사과를 드렸죠."

-노래를 다시 해보고 싶진 않으세요?

"그게 제 꿈이에요. 사실 1991년 가수로 데뷔하고서 별로 행복하지 않았어요. 매니지먼트 시스템에 휘둘리면서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했으니까. 제가 아마 록커로서는 처음으로 시트콤 주인공과 오락 프로그램 게스트, CF를 했을 겁니다. 1996년 기획사를 박차고 나와서 하고 싶은 걸 혼자 해보려니 현실의 벽이 높더라고요. 저는 폴 매카트니나 롤링스톤즈, 에릭 크랩톤처럼 오래도록 자신의 색깔을 갖는 가수가 되고 싶었거든요. 사업을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하고 싶은 노래를 했으면 좋겠어요. 50대가 되면 제 극장도 갖고 싶고요."

-아이웨딩네트웍스가 스타마케팅으로 성공한 회사라는 비난도 있습니다만.(아이웨딩네트웍스는 이승엽 박신양 한가인-연정훈 신동엽 윤손하 손미나 송일국 등 150여쌍에 이르는 유명인들의 결혼 서비스를 제공했다.)

"초기에 알고 지내던 지인들의 결혼 준비를 돕게 됐어요. 스타들의 결혼 소식이 이슈가 되고 반복적으로 알려지면서 스타마케팅을 한다는 인식이 생긴 거죠. 그런데 즉흥적인 스타마케팅은 고객들이 '서비스는 좋은데 가격이 고가가 아닐까' '유명인들을 이용해 비싸게 팔아먹으려는 수법은 아닐까'하는 오해를 부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오해를 씻기 위해 더 애를 먹었죠."

-아이웨딩네트웍스의 목표는 뭡니까?

"웨딩이라는 테마를 산업군에 올리는 게 우선 목표이고요. 이 시스템과 서비스를 갖고 해외로 진출하고 싶어요. 국내 웨딩상품이 경쟁력이 있습니다. 작년에 외국인 470쌍이 저희를 통해서 결혼 준비를 했는데요. 앨범이나 메이크업, 비디오를 보면 굉장히 놀라고 좋아합니다."

-만약 6개월밖에 삶이 남지 않았다면 뭘 해보고 싶으세요?

"일단 술을 실컷 마시고 싶고요. 하하.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아이들이 인생을 살면서 도움이 될 경험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리고 유작을 남겨야겠죠. 제 죽음과 이미지가 연결될 만한 멋진 유작이요."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김태욱은?=1969년 대구 출생. 가수가 되겠다며 집을 뛰쳐나가 1991년 '개꿈'으로 데뷔했다. 싱어송라이터로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행복하지 않은' 가수 시절을 보내다 1998년 성대 이상으로 가수 생활을 접었다. 2000년 당대의 톱스타 채시라와 결혼해 화제를 뿌렸고 2000년 웨딩업체 아이웨딩네트웍스를 설립, 사업가로 변신했다. 4만5천여쌍의 결혼 고객을 유치했고 연간 거래액 500억원의 업계 1위 업체로 키웠다. 2004년 Mr.Kim이라는 예명으로 '담백하라'라는 앨범을 냈고 이 노래는 채시라가 출연한 KBS TV '애정의 조건'에 삽입돼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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