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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대화] 글쓰기는 바람처럼 떠돌기…시인 최재목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의 낯빛을 가졌다. 1961년생, 세파에 찌들만한 나이인데 낯은 그렇지 않다. 그의 시집 '잠들지 마라 잊혀져 간다' 에서나 산문집 '사이(間)에서 놀다(遊)'는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지만'백면서생'같은 생각도 군데군데 묻어있다.

경북 상주의 산동네 출신인 시인은 일본 유학시절 학비를 벌며 공부했다. 파친코 아르바이트, 도로포장, 술집 아르바이트 등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고생한 게 분명하지만 낯에는 고생한 흔적은 없었다.

"고전에 묻혀 지냈기 때문일 겁니다."

세상의 속성이 거칠다면 고전의 속성은 향기롭다. 그러니까 최재목은 낮에 따가운 햇볕아래에서 일했고, 밤에 고전의 향기에 파묻혀 지냈던 것이다. 그래서 얼굴에 '세상살이의 흔적'이 나이만큼 고이지 않은지도 모른다.

"철학은 근본을 묻는 학문입니다. 각론보다는 총론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철학자도 현실을 알아야 하지만 철학자가 현실에 묻히면 곤란하지요."

최 교수는 현실인과 철학인은 서로 보완적이라고 했다. 현실에 묻힌 사람이 이해관계에 묻혀 진실을 보기 어렵다면, 철학자는 오직 진실만을 보려는 습성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최재목 교수는 '나는 가슴 큰 여자가 좋다'고 했다. 길을 걷다가 가슴 큰 여자가 지나가면 훔쳐보고, 뒤돌아보기까지 한다고 했다. 겁도 없이! 그는 '가슴 큰 여자'에 대한 환상을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이 때 어머니 가슴이 작았던 데다가 숙모가 젖이 없어 사촌동생과 젖을 나눠먹었다고 했다.

"늘 '부족'을 느꼈고, 그 부족이 오늘 시를 쓰는 이유입니다." 최 교수는 자신이 왕양명을 전공했던 것도 결핍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부족을 아는 사람은 따뜻함을 추구하는데 왕양명 역시 그랬다는 것이다.

"나는 추풍령 아래 산골마을에서 기차소리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기차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 기차가 가는 먼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바람처럼 떠돌고 싶었습니다. 글쓰기는 바람처럼 떠돌기이며 또한 떠나지 못하는 자의 가슴에 난 상처를 치유하는 행위입니다."

그는 "내 '떠돌이 기질' '바람'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지지해주는 아내가 고맙다. 현실에서 나는 틀림없이 나약한 존재이지만 아내의 지지 덕분에 나는 강하다"고 했다. 최 교수는 지금까지 20권의 책을 냈고, 140여편의 논문을 썼다. 이 많은 책과 논문은 그가 글쓰기에 파묻혀 살아왔음을, 그리고 잘 해봐야 10점짜리 생활인임을 짐작하게 한다.

'떠돌이 기질'을 이해해주는 아내가 고맙다, 는 그의 말은 '이왕 참고 지지해주기로 마음먹었으니 앞으로도 더 참고 지지해달라는 당부이자 아부처럼 들렸다. 앞으로 자기 키(171cm)만큼 책을 쓰고 싶다는 말이 이를 방증한다.

최 교수의 글에는 패러다임이 없다. 시도 쓰고, 산문도 쓰고, 칼럼도 쓰고, 논문도 쓴다. 말하자면 그는 학자며 시인(1987년 일본 유학시절 매일신문 신춘문예 등단)이고, 서예인이며 화가이고, 칼럼니스트이며 수필인이다. 최근에 펴낸 그의 산문집 '사이에서 놀다'는 대부분 '교수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을 묶은 것이다. 각 장르의 성격도 가지각색이다. 그런가 하면 붓글씨도 쓰고, 시집에 넣을 삽화도 그린다.

"마음 가는 대로 합니다."

여러 방면을 넘나들기에 종종 '당신 정체가 무엇이냐?'는 질문도 받는다. 최재목은 '그 모두가 나'라고 했다. 몇 해 전부터 그가 창안하고 발전시켜온 '늪'이란 개념과 부합한다. 그의 '늪 이론'은 간단히 말해 '이질적인 것을 구분없이 수용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생명성을 찾는 것'이다. 그의 '늪'은 흡수하고 포용해서 새롭게 탄생시킬 뿐 '무엇이 왜 들어왔느냐'고 구분하거나 '나가라'고 배척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의 '늪'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투입물을 선별하는 이론 혹은 작업과 다른 셈이다.

최재목 교수는 6, 7년 전부터 '10자시'를 써왔다. 딱 열자로 시를 완성하는 것이다. 일본의 하이쿠(17음으로 된 시)보다 짧다. 우리말이 표음문자임을 고려하면 짧아도 무지막지하게 짧은 시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짧은 형식의 시가 아닐까 싶다. 대체 이 10자로 무슨 말을 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최재목 교수는 "10자는 사람이 자기생각과 삶을 나타낼 수 있는 최소한의 글자수라고 볼 수 있다. 시는 생각을 펼쳐놓는 것이 아니라 가두는 것이다. 시인은 짧게 토하고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이 완성하는 것이다"고 시에 대한 주관을 밝혔다.

'잠들지 마라 잊혀져 간다' '외로워졌다면 어른이다' '밑도 끝도 없다 물어봐도' '넘쳐도 내 손이 닦을 눈물' '그렇게 조용히 가버렸네'

모두 최재목 교수가 쓴 '10자시'들이다. 이 가난한 언어로 만들어진 시들은 그러나 무한히 확장된다. 시를 윤기나는 언어로 보여주는 대신 여백으로 남겨둠으로써 독자는 무한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밑도 끝도 없다 물어봐도'는 우리가 나서 죽을 때까지 놓지 않는 질문에 관한 이야기며 그렇게 끝없이 물었음에도 답을 얻지 못하고 떠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삶은 물을수록 아름답고 가치있는 무엇'이다. 답을 얻을 수 없다고 묻지 않는다면 존재하지도 않는 것일테니 말이다.

'그렇게 조용히 가버렸네'….

세상에 조용히 떠나지 않을 것이 무엇이 있을까. 꽃상여 타고 떠나든, 들여다볼 사람 없는 가시덤불 속에서 사라지든, 화려했거나 남루했거나 간에 사람이 떠난 자리는 '조용한 법'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세상 물정만 아는 사람…. 시인 최재목은 그 가운데 서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 최재목은…

1961년 경북 상주 출생. 영남대 철학과 졸업. 일본츠쿠바(筑波)대학교 석사 및 박사. 동경대 객원연구원 및 하버드대 연구교수. 현재 영남대 철학과 교수. 저서로 '동아시아의 양명학''나의 유교 읽기''양명학과 공생, 동심, 교육의 이념''시인이 된 철학자''크로스오버 인문학''유교와 현대의 대화''멀고도 낯선 동양''왕양명의 삶과 사상: 내 마음이 등불이다''글쓰기와 상상력의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늪'등. 198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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