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감 후] 누가 그랬을까

"보아가 일본에서 진짜로 돈 많이 벌었는갑네. 미국의 큰 은행을 인수한다잖여."

TV를 보던 한 아주머니가 자막으로 흐르는 속보를 보고 수군댑니다. 'BOA, 메릴린치 인수'라는 뉴스였습니다. 경영위기를 겪는 미국의 대형증권사 메릴린치를 미국 최대의 상업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인수한다는 뉴스였습니다. 약자로 쓴 은행 이름을 여가수 보아로 잘못 읽은 것임을 알고선 피식 웃고 맙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Wall)가가 미증유의 신용경색으로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품새가 흉흉할수록 음모론이 자양분을 얻습니다. '사실'(fact)과 '상상'(fiction)이 기막히게 조합된 음모론일수록 귀가 솔깃해집니다. 그 중 하나는 국제 금융계의 '큰손'들이 사실상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역사를 뒤흔든 중대사건의 배후에 그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중 하나가 로스차일드 가문입니다. 세계 제일의 갑부는 500억달러의 재산을 가진 빌 게이츠가 꼽히지만, 호사가들은 로스차일드 가문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숨은 부자라고 믿습니다. 250년 전 프랑크푸르트 게토에서 시작해 7대째 이어온 이 유대인 가문의 재산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50조달러에 이른다는 추정도 있습니다. 워털루전쟁을 통해 엄청난 부를 일군 그들은 금융업을 기본으로 석유, 다이아몬드, 금, 우라늄, 레저산업, 유통업에 이르기까지 세계 경제 곳곳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19세기에는 "로스차일드의 지원이 없으면 유럽의 어느 왕도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말까지 나돌았을까요.

유럽에 로스차일드가 있다면 미국엔 '금융왕' 존 피어트 모건(1837~1913)이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금융기업인 JP모건체이스와 모건스탠리가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회사들이지요. 남북전쟁 당시 군납사업으로 큰 돈을 번 모건은 이후 미국의 철도 및 통신산업을 장악했으며, 무명에 불과한 에디슨을 고용해 엄청난 부를 챙겼습니다. 이후 금융업에 진출, 1907년 미국의 금융공황을 수습했고 뉴욕시를 파산에서 구원했습니다.

JP모건 가문은 월가의 막후 실력자입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JP모건을 중심으로 한 민간은행들이 '사실상의 주인'입니다. 때문에 미국 정부는 달러를 찍어낼 권한이 없습니다. 달러 발행 권한 회수는 미국 정부의 오랜 숙원이었고 일부 대통령이 시도했지만 성공한 이는 없었습니다. 링컨과 케네디가 대표적 인물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둘은 암살되고 맙니다.

달러의 패권에 도전한 이들은 모두 비극을 맞았습니다. 이라크 전쟁 역시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명분으로 일으켰지만, 후세인이 원유 결제수단을 달러에서 다른 통화로 대체하려 했다가 화를 자초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음모론은 멈추지 않습니다. 1·2차 세계대전과 1929년 대공황, 1970년대 석유위기, 일본의 10년 불황,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도 막후 금융재벌들이 꾸민 책략 때문이라는 겁니다. 물론 무턱대고 동의하기 쉽지만은 않은 주장입니다.

지난 19일 조지 부시 대통령은 7천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시장에 풀겠다는 극약처방을 내놓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시는 JP모건체이스의 '훈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미국발 신용위기 수습 역시 JP모건의 손에 달렸다는 이야기마저 나돕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요. 실체를 알기 힘든 것이 세상사인가 봅니다.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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