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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케스트라'는 악단의 '자리'였다

오페라 공연을 보기 위해 오페라하우스에 가서 자리에 앉는다. 아직 막은 올라가지 않았으니, 무대 위에는 커튼만이 드리워져 있다. 그때 관객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대 아래에 있는 커다란 구멍 같은 장소다. 그 속에 악단의 단원들이 앉아 있는 것을 누구나 보았을 것이다. 그것을 '오케스트라'라고 부르는 정도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위치해 있는 큰 구멍 같은 장소를 '오케스트라 피트'라고 부른다.

하지만 원래 오케스트라라는 것은 악단을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오케스트라가 들어 있는 그 장소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지금 우리가 주로 가는 음악당, 특히 오페라하우스의 구조는 그 자체가 과거 그리스나 로마시대 고대 극장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과거 그리스 시대 야외극장의 모습을 아마 사진이나 광고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산중턱의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앞에 무대가 있고 그 주위를 반원형(半圓形)으로 된 객석이 스탠드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객석들은 동심원(同心圓)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그 많은 동심원들의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원형(圓形)의 바닥에는 악단이 앉는다. 그 악단이 앉는 원형의 자리를 원래 '오케스트라'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스 비극들도 일종의 음악극 형태였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극이 진행될 때에 오케스트라에 앉은 악단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였다.

그리고 시대가 점점 발전함에 따라서 동심원의 객석들은 위로 일어서는 형태가 되어서, 요즘 유럽의 오페라하우스에서 볼 수 있는 발코니가 둘러싼 스타일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앉던 자리가 지금 오페라하우스의 1층 바닥이 된 셈이다. 그리하여 지금도 유럽에서는 1층 바닥의 좋은 자리를 '오케스트라'석이라고 표현하는 극장이 있다.

그러면서 악단은 객석과의 사이에 점점 낮은 벽을 치게 되고, 나아가서 오케스트라 피트라는 자신들만의 박스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오케스트라의 높이는 극장에 따라 다르다. 어떤 경우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상반신이 객석에서 다 보이는 경우도 있고, 그들이 아주 아래로 내려가서 지휘자의 머리 정도 외에는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요즘 대부분의 오페라하우스의 오케스트라 피트는 바닥이 큰 엘리베이터처럼 위아래로 오르내릴 수 있기 때문에 작품의 성격에 따라서 또는 지휘자가 그날 음악을 추구하는 효과에 따라서 오케스트라 피트의 바닥 높이는 올라오기도 하고 깊게 내려 갈 수도 있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열리는 독일의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의 경우는 오케스트라가 거의 지하 2, 3층 정도의 깊은 곳에 자리하게 하고 있으며 객석에서는 희미한 불빛 정도만이 새어나올 뿐이다. 이것은 오페라를 감상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움직이는 모습이나 그들이 악보를 보기 위해서 사용하는 보면대 위의 작은 불빛 같은 것들이 관객들이 극중으로 몰입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이 극장을 계획한 작곡가 바그너는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무대 아래에 있는 오케스트라는 전혀 보이지 않고, 관객들은 마치 TV의 화면만을 보듯이 무대에 빨려들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 극장의 경우는 오케스트라가 저 밑에 위치하여, 거기서 올라오는 관현악의 사운드가 무척이나 장중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박종호(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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