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시향 지휘자 곽승 "대구 브랜드 걸맞는 시향 만들겠다"

대구시향 제9대 지휘자로 내정된 곽승씨가 지난 26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대구시향 제9대 지휘자로 내정된 곽승씨가 지난 26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한국의 대표 마에스트로 곽승(67)씨가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수장이 됐다. 그는 내달 1일 대구시향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위촉돼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2년 임기로 대구시향 지휘자로 부임한 그는 내달 21일 제348회 정기연주회에서 지휘봉을 잡는다. 첫 시작의 상쾌한 출발을 알리는 경쾌한 레퍼토리로 대구관객과 첫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지난 26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난 그는 때론 온화하게, 때론 강렬하게 대구시향 지휘자로서의 의지를 펼쳐보였다.

-한 음도 소홀히 하지않는 엄격한 지휘자로 정평이 나 있다. 트럼펫 외에도 첼로, 피아노, 작곡 등을 공부하며 각 파트를 담당한 단원들보다 높은 음악적 기량을 선보였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한국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당신은 두려운 존재로 각인돼 있다. 실제 지난 24일 시향 정기연주회 때 당신이 객석에 앉아 있어 단원들이 초긴장 상태로 연주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이런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1983년 클리블랜드 지휘자였던 조지 쉘이 이와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고 내가 조지 쉘과 비슷하다는 뜻은 아니다.(웃음) 단원들에게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요구할수록 이런 평가가 나오는 것 같다.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만들기 위해선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대구시향 지휘자로 부임한 이상 나 역시 완성도 높은 연주를 위해 공부할 것이고 단원들에게도 꾸준히 요구할 것이다."

-KBS교향악단 동기이자 현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인 서현석씨는 당신에 대해 "지독한 연습벌레다. KBS교향악단 트럼펫 단원으로 활동할 때부터 무서운 집중력을 보였다. 지휘자가 된 후엔 피아노, 첼로, 작곡 등을 배우며 악기의 한 음 한 음을 명확히 짚어내 오케스트라 단원을 놀라게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당신이 가진 높은 기대치와 현실과의 괴리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궁금하다. 현 대구시향 단원들조차 '잃어버린 10년'이라며 시향의 저조한 실적을 토로하고 있다.

"연습밖에 없다. 서울시향의 경우 시의 전폭적인 지지와 많은 예산, 풍부한 인적 인프라 등 최적의 조건에서 집을 새로 지은 격이다. 대구시향은 이를 따라갈 수 없다. 난 집을 고칠 것이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우선 연습량을 대폭 늘릴 것이다. 단순히 시간을 늘린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음악을 정확히 듣고 꼭 필요한 코멘트를 해 줄 것이다. 그 이후는 그들의 몫이다. 그들은 이미 프로다.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

-오디션 탈락을 의미하는 것인가?

"극단적인 방법은 혼자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험을 조언받아 함께 만들어나갈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비슷한 실력의 학생들로 꾸려진 오케스트라가 특출나게 좋은 실력을 보인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심리적인 화합이 답이었다. 좋은 음악을 만들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엄청난 실력 차이를 만들었다. 대구시향 역시 가능하다. 단원들 사이 스스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이미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지난 5월 대구시향을 객원 지휘했다. 또 24일 정기연주회도 들었다. 대구시향을 진단해 달라.

"교육도시, 공연문화도시 대구란 위상에 비해선 실력이 뒤처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단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뉴욕 필과 베를린 필 등은 이미 도시의 국제적인 브랜드 가치가 돼 있다. 이를 만들지 못한 것은 행정적인 문제도 내포돼 있다. 문화는 정신적인 여유에서 시작된다. 눈 앞의 이익만 좇아 단기투자만 할 경우 도시의 이미지와 문화척도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시향에 투자를 해야 한다. 오랫동안 파트별 수석 자리가 비어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다."

-부산과 서울시향 지휘자로 부임할 당시 해외 순회공연을 많이 했다. 이유가 있다면?

"재정적 여유만 있다면 당연히 해야할 부분이다. 해외에서 대구를 알릴 수 있는 고급문화 중 오케스트라를 이용하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2011년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다고 들었다. 대구시향을 이용해 국제적으로 대구를 알리는 것, 멋지지 않나? 대구의 얼굴로 해외 공연을 나선다면 단원들 역시 긴장하고 자극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세계적인 위상을 갖춘 지휘자이다. 아쉬울 것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스스로 대구시향이란 어려운 선택을 했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유가 있나?

"육체는 영원하지 않다. 내가 배운 기량을 한국, 내 고국에 전수하고 싶다. 내 나이가 들면 그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대구시향에서 내 마지막 열정을 불태울 것이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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