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구토

그녀는 구토가 난다고 호소했다. 방사선 치료를 시작한 후부터 욕지기(구역질)가 나서 밥도 먹기 어렵고 물도 마시기가 힘들다고 울먹였다. 10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고, 5년 전 재발해 다시 수술을 받았었다. 1년 전 다시 암이 재발해 항암제 치료를 받던 중 두통이 심해 MRI를 시행했다. 암이 뇌에 전이된 것이 발견돼 뇌수술을 받았다. 항암제 치료를 다시 받고 나서 1년 후 머리와 등이 아프다고 하여 또다시 뇌와 척추의 MRI를 촬영했다. 뇌에도, 척추에도 종양이 발견돼 또 뇌수술을 받고 이제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구토는 숨골(연수·延髓)의 제4 뇌실 끝 부위에 위치하고 있는 구토중추가 자극받을 때 일어난다. 몸에 해로운 것이 들어오거나 위(胃)의 자극, 뇌압 상승 혹은 항암제 같은 화학물질이 구토중추를 자극할 때 일어난다. 이 환자는 아마 방사선 치료 후에 야기되는 일시적 뇌부종으로 뇌압이 상승해 구토를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촛불시위를 했던 사람들도 어찌 보면 구토를 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들한테 들어온 어떤 것을 마음으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밖으로 뱉어냈던 행위일 수도 있다. 촛불 불꽃들은 시위자들이 뱉어낸 구토물일 수도 있다. 일종의 자기 방어적 행동으로도 해석할 수가 있다.

사르트르가 쓴 '구토'에서 주인공인 '로캉탱'은 외계의 사물이나 인간을 접촉할 때 접촉하는 물질에서 전해오는 불쾌한 기분으로 구토를 느낀다. 이 구토는 존재하는 것에서 본질이 빠진 원시적인 어떤 것이다. 모든 것들은 존재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존재할 이유가 없이 존재하는 것들뿐이다. 주인공은 존재의 이유를 찾고자 글을 쓴다.

환자의 고통스러움을 듣던 나도 문득 구토를 느낀다. 타인의 불행을 아무런 감정 없이 소화시키기에는 내 나이도 이제 너무 든 것 같다. 젊었을 때는 그렇게 냉정하게 환자들의 불행을 소화해내던 내 장기들도 이제는 소화불량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녀가 구토를 느낄 때 나도 같이 욕지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환자들을 치료할 때 혹은 사회를 이끌어 갈 때 이러한 욕지기들은 냉정한 판단을 흐려 장애가 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의술도,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도 냉정한 진실만을 추구하는 자연과학은 아니다. 사회에도 의술에도 인간애가 녹아 있어야 한다. 나는 괴롭더라도 '로캉탱'이 느낀 존재의 허무에 대한 구토가 아니라 타인의 불행을 안타까워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토를 계속 경험하고 싶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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