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멜라민과 順命

건강욕심'악덕 상혼이 부른 재앙/자연 거스르면 生命이 병드는 법

엊그제 일본 요미우리 신문 사회면 톱기사의 제목은 '바나나가 동이 났다'였다.

중국산 과자의 멜라민 소동으로 아시아권 나라들이 발칵 뒤집혀 있는 마당에 웬 바나나 이야기가 멜라민보다 더 크게 보도되고 있느냐고 의아해 할 만했다.

더구나 바나나에 멜라민 성분이 첨가돼 있다는 얘기도 아니었다.

전국 각지 슈퍼에 바나나가 동이 난 이유가 '다이어트에 좋다'는 입소문 때문이라는 거다. 최근 TV에서 어느 인기 스타가 바나나 다이어트 얘기를 하고 난 뒤 바나나 매출이 70%씩 뛰어올랐다는 것.

일본의 식품학 교수 등은 얼마 전 '낫토(일본식 청국장)가 다이어트에 좋다'는 소문이 돌면서 온 일본 열도가 난리를 치르고도 모자라 또 이번엔 바나나 소동이냐며 냄비형 소비자 행동론을 비판하고 있지만 바나나 광풍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본 쌀과자에 멜라민 성분이 검출돼 회수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바나나를 동내는 일본 소비자들을 아둔하다 욕할 것도 없다.

우리 쪽도 '뭘 먹으면 어디가 좋다더라'는 소문만 뜨면 너도나도 기를 쓰고 찾아 먹고 반대로 '그걸 먹으면 암에 걸릴 수 있다더라'는 뉴스라도 나가면 순식간에 젓가락질을 멈춘 먹을거리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식품이든 의약품이든 좋다고 실컷 먹고 나면 뒤늦게 발암물질이니 뭐니 발표돼 소동이 나거나 어느 대학 연구실에서 '뭐가 어디에 좋다'고 발표하고 난 뒤 금세 다른 나라 대학에서 그게 아니고 어디엔 좋지만 어디는 더 나빠진다더라고 요란 떤 게 한두 건이 아니다.

이번 멜라민 소동도 분유 먹은 어린이들이 사망하고 수만 명이 병실에 드러눕고 나서야 나라마다 수천t의 제품을 폐기'수거하느라 난리들이다.

유가공품뿐 아니라 냉동만두'사탕'광어'우럭 사료에도 500t 이상 공급됐다지만 깜깜무소식이었고, 법규에는 멜라민을 사료 첨가물로 쓰면 안 된다는 규정조차 없었다.

아직 또 뭐가 섞여 있는지도 모르고 먹고 마시고 있는 먹을거리가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조차 없다.

인터넷 정보망이 전 세계를 초 단위로 얽어놓고 최첨단 의약학 과학은 우주 속으로 올라가는데도 먹을거리문제는 늘상 먹고 난 뒤에야 수입금지니 회수폐기니 허둥댄다.

먹을거리에 관한 시스템과 정신이 망가져 있는 것이다.

그런 게 다 따져보면 한가지 이유로 귀결된다. 바로 욕심이다.

좋은 거라면 기를 쓰고 찾아 먹고 담배씨만큼이라도 나쁜 거라면 불에 댄 듯 피해 가며 오래만 살고 싶다는 욕망, 먹을거리에 장난을 쳐서라도 돈만 벌고 보겠다는 욕심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욕심들로 무장하고도 대부분의 인간은 먹을거리가 아닌 다른 이유들로 生(생)을 잃는다.

어느 종교지도자는 神(신)이 내린 생명이 병들 때 바둥대기보다는 때로 順命(순명)의 마음을 가질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물욕으로 오염시킨 먹을거리에 一喜一悲(일희일비) 떠밀려 다니며 배고픈 이웃을 외면한 채 나 혼자 좋은 것만 골라 먹고 오직 오래만 살겠다는 Long Life의 욕망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연이 준 먹을거리 그대로 잘 나눠 먹으며 살다갈까라는 Good Life를 생각하는 '비운 삶'이 가치 있는 삶이란 가르침이기도 하다.

하늘과 자연에 순명하는 無慾(무욕)의 삶이야말로 우리에게 바나나가 부럽지 않고 멜라민도 두렵지 않은 마음의 풍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바나나를 동낸 일본 국민들도 행복의 기준이란 설문조사에서는 마음의 풍요가 물질의 풍요보다 더 행복해지는 조건이라고 응답했다(75%). 멜라민 사태를 치르며 우리 모두가 새겨봐야 할 무욕의 비움과 순명의 가치를 말하고 있다.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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