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기는 독도] 한국인이 던지는 '主權의 손맛'

제철 '잿방어' 낚시

▲ 주말 저녁 무렵 서도 대한봉 중턱에서 바라본 울릉도 일몰 전경. 독도에서 울릉도가 드물게 카메라에 잡혔다. 독도 이장 김성도씨가 전한
▲ 주말 저녁 무렵 서도 대한봉 중턱에서 바라본 울릉도 일몰 전경. 독도에서 울릉도가 드물게 카메라에 잡혔다. 독도 이장 김성도씨가 전한 '맑은 가을날 울릉도가 선명하게 보이고 나면 3일 이내에 꼭 궂은 날씨가 찾아온다'는 속설처럼 독도에는 지금 비바람이 거세다. 전충진기자
▲ 잿방어 낚시를 하고 있는 김성도 이장. 전충진기자
▲ 잿방어 낚시를 하고 있는 김성도 이장. 전충진기자

동도 선착장에서 울릉도행 여객선을 보내고 돌아오는 물빛은 늘 스산하다. 남은 섬사람들은 그 적막감을 또다른 노동으로 지워내곤 한다. 그래서 보트는 서도 선착장으로 곧바로 들어오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할배(김성도 이장)는 코끼리 바위 쪽으로 키를 잡는다.

그리고 줄낚시를 풀어 바다에 던진다. 모터보트가 달리는 속도만큼 낚싯줄이 수면을 스치듯 따라온다. 검지 끝마디에 낚싯줄을 걸고 조금만 달리면 순간 '덜컥'하는 묵직함이 전해져 온다. 재빠르게 줄을 거두면 틀림없이 잿방어(독도에서는 '사배기'라로 부른다)가 요동치며 끌려온다.

공격력이 강한 잿방어가 알록달록한 가짜 미끼를 향해 손살같이 달려든 것이다. 지금 독도는 잿방어가 제철이다. 여기서는 '낚시한다'라기 보다는 '건진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10분 정도 건지면 30~40cm짜리 서너 마리는 예사다.

독도에서 낚시질은 욕심을 내지 않는다. 많이 잡았다고 뻐길 데도 없고, 못다 먹는 횟감을 나눠줄 곳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 끼 반찬거리 만큼만 잡을 뿐이다. 독도에서 속절없이 '자족(自足)의 도'를 배운다. 잿방어 서너 마리에 할배는 "줄 걷어라"며 미련없이 보트를 선착장으로 돌린다.

회를 뜨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처음에는 어설픈 손놀림 탓에 "고기 다 짓무른다"며 할배의 핀잔도 많이 받았다. 독도에 온지 이제 3주가량. 제법 숙달이 됐다. 할배는 "사람 하나 다 버렸다"며 껄껄 웃는다. 기자이기 이전에 독도 사람으로 물들어 가는 느낌에 스스로 뿌듯하다. 그래도 아직 껍질 벗기는 일은 만만치 않다.

사실 독도에서의 낚시는 여가생활이나 어로행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낚시는 곧 '독도에 한국 사람이 삶을 누리고 있다'는 선언이자 증거인 것이다.

해가 기울면서 물결이 제법 사나워진다. 독도의 파도는 간단(間斷)이 없다. 밀려들고 빠져나감이 없고 사뭇 사방에서 몰려들기만 한다. 물결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뭍으로부터 달려와 갯바위에 몸 한번 문지르고는 서둘러 먼바다로 달려간다. 이 시간 독도도 밤을 준비한다. 모터보트를 끌어올리고 바람에 날아갈 것들은 모두 치워야 한다.

저녁 식사를 위해 할배 방으로 들어가면 텔레비전은 드라마를 방영하거나 오락프로를 내보내고 있다. 독도에서 보는 이런 프로그램들에서 벌써 이질감을 느끼곤 한다. 사람과 숲이 그리운 이곳 독도에서 TV 화면을 통해 보는 숱한 사람과 나무와 차량들, 그리고 네온사인 현란한 도시의 밤풍경…. 나도 저런 곳에서 살았던가.

저녁 뉴스에서 '일본의 아소 다로(麻生太郞) 내각의 지지율이 50%를 웃돈다'는 보도를 접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주의 정치가인 그가 독도에 대해 또 어떤 망언을 늘여놓을지 걱정이다.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리는 내일도 잿방어 낚시를 할 것이고, 동도의 등대 불빛은 내일밤도 저렇게 빛날것인데….

독도에서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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