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판매금지? 몰라요" 멜라민 과자 버젓이 진열

29일 오후 1시쯤 대구 달서구 상인동의 한 슈퍼마켓. 좁은 가게 안에는 돋보기를 쓴 김모(66)할머니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벽 쪽 3층 선반에 진열된 과자들 가운데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판매금지 품목으로 발표한 과자들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는 "뉴스에서 중국산 원료를 쓴 과자가 몸에 나쁘다는 말만 들었지 자세한 건 모르겠다"며 "손님들이 달라는 물건만 줄 뿐"이라고 말을 흐렸다.

◆동네슈퍼는 멜라민 '무풍지대'

소규모 슈퍼마켓은 멜라민 무풍지대였다. 식약청과 각 지자체가 29일까지 대형소매점, 편의점 170개소에서 멜라민 함유제품과 안정성 의심제품에 대한 수거·봉인작업을 거의 마쳤지만 수천개에 달하는 동네 슈퍼, 문구점 등에는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재래시장 슈퍼마켓에서도 판매금지된 수십여종의 과자가 평소처럼 팔리고 있었다. 주인 이모(55)씨는 "우리집은 담배가 주로 팔리기 때문에 멜라민과는 아무 상관없다"라고 말했다.

대구에서 수거를 담당하는 인력은 식약청 직원 40여명을 포함해 160여명에 불과하다. 달서구청 한 관계자는 "1일 4개 조를 편성해 판매 금지된 제품을 수거·밀봉 처리하고 있지만 숫자조차 파악되지 않는 슈퍼마켓을 일일이 점검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수거·점검해도 시민들은 불안

이날 달서구의 한 초등학교 문구점 앞. 한 학생이 과자를 고르다 말고 휴대폰을 꺼냈다. 어머니가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보내준 '먹지 말아야 되는 과자 품목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인규(9·달서구 상인동)군은 "엄마가 과자 뒷면에 '중국'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무조건 사먹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아이들은 문구점 앞에서 과자 진열대에서 중국산을 찾아내면 '중국산'이라고 외치는 놀이까지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문방구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45)씨는 "멜라민 파동 이후 과자 원산지를 중국인지 아닌지 물어보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시민들은 정부가 공무원을 동원한 수거 외에는 별다른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초교 2학년 자녀를 둔 이인숙(37·여)씨는 "온통 멜라민 이야기 뿐이지만 금지 품목을 제대로 아는 곳이 없다. 지자체나 식약청이 관련 공문을 보내는 등 홍보활동을 해야할 것 아닌가"라고 언성을 높였다.

문구점 업주 김모(45)씨는 "공무원들이 가게에 와 과자류 판매 금지 품목을 조사하는 데만 1시간 가까이 걸렸다. 전문성도 없고 효율성도 떨어지더라"며 혀를 찼다. 한 공무원은 "점검 목록표만 수집장짜리 세 묶음이나 되고 비슷한 제품이 많다 보니 대조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동네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녀야 한다니 눈앞이 캄캄하다"고 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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