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한 부자들을 대하는 서민들의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우리는 이 진리를 미국 금융시장 위기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미국 하원의 구제금융안 표결 부결에는 가진 자들의 오만에 대한 미국민들의 분노가 깔려 있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미국 하원의 구제금융법안 표결을 앞두고 의원들에게 '내 돈으로 월스트리트의 부자들을 구하지 말라'는 주민들의 전화가 쇄도했다는 것이다. 연봉 수억에서 수십억원씩 받아 챙기는 그들이 기상천외한 파생상품을 만들어 돈장난을 벌이다가 파국으로 이어졌는데 여기에 세금을 쏟아붓는 것에 대해 미국 국민들은 동의할 수 없었고 이것이 법안 부결로 이어졌다.
미국 정부는 7천억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안이 더 큰 위기를 막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다며 수정된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하지만 '앞으로 더한 위기가 닥치더라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길 없는' 서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사실 미국의 금융위기는 월스트리트의 부자로 불리는 금융고수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무한정으로 돈을 빌려 집을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을 경제학자들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름을 갖다 붙인 파생상품으로 증권화하면서 가상의 부를 생산해 왔다.
월스트리트에서 나온 금융상품들은 선진 금융기법이란 이름 아래 전세계로 팔려 나갔고 우리나라 금융권이나 기업들도 앞다퉈 사거나 받아들였으니 월스트리트 부자들의 탐욕에 우리 역시 희생양이 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금융위기가 우리의 생존을 직접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경색되면서 금융회사와 기업들이 달러를 구하지 못하는 바람에 원/달러 환율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른다. 연구기관들에 따라서는 1천300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예측한다. 워낙 달러 수요가 많아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시장안정을 위해선 외환보유액을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2천400억달러 남짓 남아있는 달러를 쏟아부었다가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런 마당에 수출이 크게 둔화되면서 8월 경상수지가 사상 최대의 적자를 냈다. 경상수지가 적자를 내면 외화 비축이 안 돼 환율을 근본적으로 안정시킬 방안이 없다. 경상수지 적자는 내수 부진 속에서도 그동안 한국경제를 지탱해 오던 수출이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소비가 살아나야 수출이 활성화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 내수 부진에 시달리는 우리 경제의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미국 국민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월가의 부자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탐욕에 전지구인들이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정책은 우리 국민들이 한국의 부자들도 덩달아 미워하도록 만들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 계층 간 위화감을 조장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름 아닌 종합부동산세 얘기다. 과세 기준을 현행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세제개편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강행하겠단다. 여당 의원들조차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은 심각한 경제난 속에 정책 우선순위로 보기 어렵다며 반대하고 나섰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극소수의 부자를 위한 정책이란 비판 제기에 대해 잘못된 세금 체계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란 대통령과 일부 장관의 강단 때문에 여당도 뜻을 굽히기로 했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안고 금융구제안을 들고 나왔지만 국민들의 절대적 저항에 부딪혔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정작 2%에 불과한 소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광범위한 반대를 무릅쓰고 종부세제 개편안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대의명분이 뚜렷해도 반대가 많으면 실행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정책이다. 하물며 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것을 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닌가. 출범 7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는 현 정부가 국민들의 외면만은 받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최정암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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