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반월당 부근에 있는 염매시장. 돼지고기 수육과 떡 등으로 유명한 이 시장은 지금 격변의 기로에 서 있다. 상당수 점포들이 현대백화점 부지에 포함돼 철거됨에 따라 이웃한 종로 등지로 이전하는 등 시장의 모습이 크게 바뀌고 있는 중이다.
염매시장에서 장사를 한지 30년 가까이 된 이정분(62'여)씨는 "평생에 걸쳐 정들었던 가게가 철거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며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손님들이 염매시장을 계속 찾아줘 시장이 계속 활기를 띠기를 바란다"고 했다. 달성 가창이 고향인 이씨는 염매시장의 터줏대감 가운데 한 사람이다. 20대부터 팔달시장에서 채소를 팔기 시작해 남문시장을 거쳐 염매시장에 터전을 잡은 게 벌써 '강산이 세번 바뀌는 세월'이 흘렀다.
'가창식당'이란 상호로 염매시장에서 이씨는 돼지고기를 판매했다. "남문시장에서 3년 정도 장사를 하다 염매시장에 세를 얻어 고깃집을 차렸지요. 결혼식을 하는 사람들에서부터 경찰서와 같은 관공서, 매일신문을 비롯한 주변의 사무실 등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돼지고기를 많이 사가셨지요. 1주일에 돼지 30마리를 판 적도 있었어요." 가창식당의 수육이라고 하면 맛이 있기로 인근은 물론 대구 곳곳에 소문이 자자했다는 게 이씨의 귀띔. 새벽 3시에 가게 문을 열고 밤 12시에 문을 닫을 정도로 손님들이 많았다. 초등학교 은사는 이씨의 가게를 직접 찾아와 고기를 잘 삶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을 정도였다.
"돼지고기를 삶을 때 된장'생강'커피 등을 넣는 사람들이 많지만 저는 맹물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돼지고기를 삶았어요. '고기맛이 좋은 비결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경산 등지에서 좋은 고기를 사오는 것 외엔 특별한 비법이 없었지요. 소금도 넣지 않았어요." 고기를 삶는 시간은 약 2시간 정도. 삶을 때 아무것도 넣지 않아야 돼지고기 특유의 구수한 맛을 살릴 수 있다는 게 이씨의 얘기다.
젊은 시절을 워낙 바쁘게 살았다보니 이씨는 "지금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또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됐지만 그 때엔 옆과 뒤를 돌아보지 않고 일만했다"고 털어놨다. 돼지머리를 눌러 편육을 만드는데 너무 힘을 쓴 결과 허리 디스크란 '직업병'을 얻어 수술을 받기도 했다.
"28살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 아들 두 명을 키우고, 시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식당 일에 청춘을 바칠 수밖에 없었지요. 지금 큰 아들은 의료기구상사를 운영하고 작은 아들은 떡집을 하는 등 아들들이 잘 자라줘 인생에서 커다란 보람을 느끼지요."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경구를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홀로 된 시아버지를 15년 동안 정성껏 모시는 등 이씨는 효부로도 이름이 났다. 장사를 시작한지 10년만에 세들었던 건물을 살 만큼 이씨가 밤낮으로 일한 덕분에 손님이 몰렸다.
10여년전 이씨는 가창식당을 여동생에게 물려주고 떡과 이바지음식을 판매하는 가창혼수떡집을 차렸다. 지금은 둘째 아들과 함께 떡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씨가 만든 떡은 달지도 않고 간이 딱 맞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창에서 직접 농사를 지은 쌀과 의성 안계 등지에서 구입한 최고로 좋은 쌀로 떡을 만들어요. 전복이나 가오리 등으로 만드는 이바지음식을 할 때도 최고로 좋은 재료를 쓰지요. 좋은 재료에서 가장 좋은 맛이 난다는 게 제 믿음입니다."
염매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18명 가운데 이씨가 가장 나이가 많다. "지난 4월 떡집을 종로로 옮겼지요. 가게를 옮겼지만 단골들은 계속 찾아오시지요. 떡을 찾는 고객들도 꾸준하게 느는 편이지요."
요즘도 이씨는 오전 5시에 가게 문을 열고 오후 10시에 문을 닫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염매시장에서 수십년 동안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인생에서 큰 즐거움이지요. 5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염매시장이 손님들의 사랑을 받아 계속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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