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귀뚜라미 소리

한밤중이었다. 딸애가 급하게 방문을 두드리기에 그 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방안 어디선가 계속 이상한 소리가 나서 무서워 잠을 이룰 수 없다며 투덜거렸다. 대신 잠자리를 바꾸어 내가 딸애 방에서 자기로 하였다.

딸애가 잠결에 들은 이상한 소리는 바로 귀뚜라미 소리였다. 고층 아파트 방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른들이야 시골에서 귀뚜라미, 베짱이 소리를 늘 듣고 자라 친근감을 갖지만, 도시에서 나서 자란 요즘 아이들에게 이 소리는 오히려 '무서운 소리'로 들리는가 보다. 다 큰 것이 귀뚜라미 소리를 무서워하여 벌벌 떨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정겹고 친숙한 소리가 딸애에게는 무섭고 짜증스러운 소리로 들렸는가 보다.

수업시간에 가끔 귀뚜라미(또는 실솔)를 소재로 한 글을 만나게 되면 "귀뚜라미 다 알제?"하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 소리가 어떻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우는지 나는 구체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다. 당연히 알고 있으려니 해서였다. 입시 준비로 촌각을 다투는 아이들에게 생물학적 설명을 굳이 하지 않았다.

귀또리 져 귀또리 어엿브다 져 귀또리,/ 어인 귀또리 지는 달 새는 밤의 긴 소리 쟈른 소리 절절이 슬픈 소리 제 혼자 우러네어 사창 여읜 잠을 살뜰이도 깨오는고야./ 두어라, 제 비록 미물이나 무인동방에 내 뜻 알리는 너 뿐인가 하노라.

사설시조 한 수가 생각난다. 감정이입이 두드러진 노래이다. 옛 규방여인들의 벗이던 귀뚜라미, 비록 미물이긴 하지만 이를 통해 그들은 자신의 은밀한 감정을 노래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요즘은 외면당하는 곤충이 되어가고 있다. 수많은 소리의 공해 속에 살고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귀뚜라미 소리는 한낱 귀찮은 소리일 뿐인가.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을 탓하지 않는다. 가을의 전령사인 귀뚜라미조차 외면당해야 하는 세태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마음 놓고 울 자리를 잃어서일까. 아파트 방안까지 용감하게 들어와 내 딸에게 온갖 아양을 떨다가 무시당한 귀뚜라미가 이 한 녀석뿐이었으면 한다. 낮이면 매미소리와 더불어 나무그늘에서 책을 읽고, 밤이면 귀뚜라미 소리 들으며 할머니 무릎에 누워 옛이야기 듣던, 우리들의 추억이 이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튿날 나는 딸애가 보는 앞에서 책상 밑에 숨어있던 귀뚜라미를 찾아 슬쩍 베란다 화초 위에 놓아주었다. 귀뚜라미 소리를 다시 한번 듣고 싶은 아비의 간절함을 딸애는 알기나 할까.

공영구(시인·경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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