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기는 독도] 하늘 열리는 날, 섬은 더 푸르다!

▲ 동도에 세워진 조난어민 위령비.
▲ 동도에 세워진 조난어민 위령비.
▲ 동도 접안시설로 여객선이 들어와 관광객이 내리고 있다.
▲ 동도 접안시설로 여객선이 들어와 관광객이 내리고 있다.
▲ 동도의 아침.
▲ 동도의 아침.

하늘이 열린 개천절. 3일 새벽의 서기(瑞氣)는 여느 날과 같지 않다. 그 어느날보다 바다는 잔물결로 일렁이고 하늘은 시퍼렇게 열렸다. 해가 뜰 즈음 늘 운무에 가려 붉게 타오르는 동해의 일출을 보기 어려웠는데 오늘 아침에는 구름 한 점 없는 수평선 끝으로부터 붉디붉은 해가 한반도의 동쪽 끝으로부터 솟아올랐다. 철들고 마흔 번쯤 맞아온 개천절이지만 오늘 독도에서 맞은 개천절은 사뭇 뜻깊게 다가왔다.

이날 아침은 서도 최고봉 중턱에 둥지 튼 수리부엉이 한 쌍이 창공을 솟구치는 비행으로 시작됐다. 동도 독도경비대 막사에서도 '전방을 향해 구령조정' 고함소리로 아침이 열렸다.

동도는 여성이다. 서도가 웅장하고 남성적인데 비해 동도는 아기자기하며 멋스럽다. 섬의 면적은 대구시민야구장의 절반 크기(7만581㎡)로 서도에 비해 15% 정도 작다. 대부분의 독도 사람과 시설물이 있는 곳이 동도이다. 서도가 민(民)의 섬이라면 동도는 관(官)의 섬이다.

일반 관광객이 내려 잠시 머무는 곳도 동도이다. 여객선이 독도에 들어오면 언제나 왼쪽에 서도를 두고 동도 접안시설로 다가선다. 180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1996년 4월에 착공, 1년 7개월 만에 준공한 선착장엔 500t급 이하 배가 접안할 수 있다.

접안장은 시설물이 전혀 없는 듯 말끔하게 단장돼 있지만 배가 들어오는 입구 쪽에 자동파고(波高)측정센서가 달려 있고, 광장 중앙에는 경비대 물자수송용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다. 독도경비대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는 '대한민국 동쪽끝땅'이라는 폭 2.2m 크기의 접안시설 완공비가 서있다.

접안장은 독도에서 가장 넓은 평지이다. 때문에 독도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마을 쉼터'이고 독도경비대원들에게는 연병장이다. 대원들은 여름철이면 이곳에서 물놀이를 하고 족구도 한다. 물론 족구를 할 때는, 공을 약간만 세게 차도 바닷물에 빠지기 일쑤여서 구명조끼를 입은 신참대원 서넛을 세워둬야 한다.

동도를 오르는 계단 입구 왼쪽에는 폭 3m가량의 몽깃돌 해변이 이어진다. 독도의 몽깃돌은 크기가 고르지 않아 큰 수박만한 것에서부터 메추리알만한 것까지 다양하다. 형태와 석질(石質)도 제각각이다. 때문에 독도는 좀더 원시적으로 보인다.

몽깃돌 해변이 끝나는 즈음에는 높이 2m 남짓한 오석(烏石)의 비석이 있다. 비석은 무척 도드라져 보여 눈썰미 없는 관광객도 쉽게 발견하고는 무슨 비석인지 궁금해 한다.

1948년 6월 8일. 울릉도 방향에서 날아온 12대의 B-29 미군 폭격기가 2개조로 나누어 600m 상공에서 선회하며 융단폭격, 독도 인근 조업현장이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생존자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한 척당 5~8명의 선원이 탄 30여척의 배가 전파되고 선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미뤄 150여명의 인명피해가 난 것으로 추정된다.(영남대 독도연구소 자료) 그러나 당시 미군정청은 사건 발발 8일 후에야 '오폭'을 시인한 발표를 했다.

늘 고기잡이하던 어장에서 느닷없는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억울한 고혼들을 달래기 위해 정부에서는 1950년 '조난어민 위령비'를 조성했고, 2005년 8월 이를 다시 세웠다. 이후 비석은 독도의 슬픔을 절규하듯 몽깃돌 해안을 지키고 있지만 매년 추모행사를 갖는지는 알 수 없다. 내년 6월에는 하다못해 탁한 술 한잔, 과일 한 접시라도 놓고 가련한 민초들의 영령을 기리는 제(祭)라도 올리고 싶다.

눈을 돌려 접안장 동남쪽을 보면 우람한 부처바위가 묵언정진에 들어 있다. 그 옆으로는 독도의 경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검은 호스가 가파른 해안을 기어오르고 있다. 파이프라인이다. 독도의 에너지는 일부 태양열에 의존하지만 아직은 대부분 석유에 의존한다.

42명이 생활하는 독도경비대와 3명이 지키는 등대시설을 가동하려면 엄청난 양의 기름이 필요하다. 만일 이 파이프라인이 없었다면 동도 근무자들은 하루 일과의 반을 석유 나르는 데 보내야 할 것이다. 파이프라인 시설이 돼 있지 않은 서도에선 한 달에 한번 석유배달 배가 들어오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석유통을 나르는 사역에 나서야 한다.

독도·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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