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타이타닉(1997)

죽음의 그림자에서 늘 운명적 사랑이 잉태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짧은 순간의 사랑이 영원성을 얻는 것, 죽음이 가장 극적일 것이다. 10대의 풋사랑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위대한 것도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힘 때문이 아닐까.

타이타닉호.

신화 속 거인족의 이름을 딴 이 배는 인류교만의 대명사로 회자되고 있다. 어떤 태풍도 침몰시킬 수 없는 '최강의 배'라라고 자만하면서 최고 속력을 내다가 빙산과 충돌해 승객 2천223명 중 1천517명이 바다에 빠져 얼어 죽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배였다. 길이(268m)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보다 길었고, 엔진도 4층짜리 빌딩과 맞먹었다. 거기에 실내는 호화로움의 극치를 달렸다. 그러나 가장 안전하다는 이 배는 출항 3일 만에 최후를 맞았다. 마치 신의 경지에 오르려던 바벨탑과 비슷한 말로였다.

그러나 죽음의 배, 타이타닉은 가슴 뭉클한 휴머니즘의 보여주기도 했다. 아이와 여자들을 살리기 위해 희생한 신사들이 있었고, 최후까지 뱃전에서 연주를 하다 죽어간 숭고한 악단도 있었다.

'터미네이터' '에이리언2' '어비스' 등 대작영화를 즐겨 만들어온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주목한 것은 죽음 앞에 핀 애틋한 러브스토리다.

로즈(케이트 윈슬렛)와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타이타닉이 아니었으면 만날 수조차 없는 신분의 벽을 가지고 있었다. '한 배를 탔기에' 만남이 이뤄지고, 특등실과 3등실의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눈 속에 핀 꽃처럼 하얀 얼음조각을 머리에 쓴 잭이 차가운 심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 애절함은 운명적 사랑의 원형이었다.

시인 이규리는 "사랑이라는 이름, 숨 막혀요"라고 했다. 가슴에 꽉 들어차 숨 쉴 여유조차 없는 사랑. 어떤 구속도, 어떤 신분의 벽도 없이, 날 숨조차 얼어붙는 극지의 한계에서도 가슴을 덥여주는 사랑의 힘을 그는 '숨 막히는 이름'으로 표현했다.

시는 침몰의 이유가 빙산이란 암초가 아니라 이미 술잔처럼 부서지기 쉬운 교만과 자만으로 풍자하고 있다. '파란 바닷물이 그만 손아귀의 힘을 풀었던' 것도 그들이 '한 번도 기울어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기울지 않았던 로즈와 잭, 잭이 그녀의 손을 놓아버린 것은 카프카의 말처럼 '절망이 기어오르는 발판을 없애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화가 이영철은 작품 제목을 '진혼곡-니므롯의 종이배'로 달았다. 니므롯은 신에 대항해 바벨탑을 쌓았던 고대 바빌로니아의 왕이다.

"인간이 아무리 거대하고 완벽한 타이탄족과 비견되는 철갑선을 만들었다 해도 신과 시간 그리고 자연의 힘을 간과한다면 억울한 희생만 불러오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종이배와 다름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캔버스를 작게 분리하고 반복적으로 흰 여백을 준 것은 수많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담아낸 십자가들을 의미한다.

별리(別離)의 회오리 속으로 추락하는 주인공, 짧고 뜨겁게 타오르다 꺼지는 슬픈 두 연인의 사랑과 눈물, 북해의 차가운 바다 속에서의 마지막 호흡을 사랑하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바쳤을 수많은 사람들, 삶을 향한 숨 가쁜 탈출 동선, 자연과 신 앞에서는 종이배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인간문명에 대한 경고등을 작품 속에 담았다.

헬레니즘 미술의 최고봉인 '사모트라케의 니케상'을 패러디해 마치 이 영화의 상표처럼 되어버린 두 연인의 유명한 선상 장면과, 사랑의 징표처럼 간직한 푸른 다이아몬드 등 영화의 사진들을 그 사이에 넣었다.

위태로운 종이배 위에서 잭은 로즈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비록 배는 침몰했지만, 사랑만은 침몰하지 않고 영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짧은 한 마디에서 시작했다. '나를 믿어요!'(Trust me!)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 타이타닉(Titanic, 1997)

감독:제임스 카메론

출연: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

러닝타임:195분

줄거리:1912년 4월. 금세기 최고의 유람선 타이타닉호가 처녀 출항한다. 17세 소녀 로즈(케이트 윈슬렛)는 귀족 집안의 망나니(빌리 제인)와 결혼을 앞두고 이 배에 승선한다. 배가 출발하기 전 도박으로 겨우 3등석 좌석을 얻은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배에 오른다. 상류사회에 숨 막힌 로즈가 자살하려는 순간, 잭이 나타나 설득하면서 둘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다. 신분을 뛰어 넘는 사랑은 그러나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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