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인기라고 합니다. 오케스트라를 소재로 한 것이어서 참신한 맛도 있고 '강마에' 역을 맡은 탤런트 김명민의 지존급 연기에 푹 빠져듭니다. 필자가 문화부에서 음악담당 기사를 쓰던 몇 년 전 대구의 한 공연장에서 클래식 공연을 보던 아이가 아빠에게 묻습니다. "지휘자, 돈 많이 벌어?"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 가장 많이 받을 걸? 근데 왜?" "지휘자는 참 좋겠다. 악기 연주도 안 하고 그저 팔만 흔들면서 돈 제일 많이 받잖아."
지휘자에게 오케스트라는 악기입니다. 악보 안에 박제되어 있는 음표들은 지휘봉의 움직임을 따라 감동의 오케스트레이션 떨림으로 생명력을 얻습니다. 19세기 독일의 피아니스트이자 명지휘자인 한스 폰 뷜러는 오케스트라에 있어서 지휘자의 역할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쁜 오케스트라는 없다. 그저 나쁜 지휘자만 있을 뿐."
뷜러는 자신보다 열일곱살 많은 음악 선배인 리하르트 바그너에게 부인을 빼앗긴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프란츠 리스트의 딸인 코지마는 27세의 나이에, 51세의 바그너와 눈이 맞아 남편 뷜러를 버립니다. 견디기 힘든 모멸감과 상실감 속에서도 뷜러는 바그너의 음악을 계속 연주해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는 공사가 분명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그가 지휘하는 바그너 음악을 듣고 감동한 한 중년여성이 눈치없게도 그에게 묻습니다. "바그너를 잘 아세요?" 뷜러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그는 제 아내의 남편입니다."
세상이 혼란스럽습니다. 전 세계를 사통팔달 엮은 정보화 때문에 공포와 탐욕은 순식간에 전염되고 혼란상은 증폭됩니다. 인드라의 그물처럼 얽히고 설킨 세계화가 가져다주는 고통을 현대인들은 톡톡히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금의 상황을 정리해볼까요. 자본주의의 맹주라는 미국은 마치 경제가 전복될 것만 같은 절박한 비명을 냅니다. 멀리 떨어진 한국의 경제도 백척간두입니다. MB정부 등장 이후 환율은 무려 300원이나 폭등했습니다. 우리의 돈 '원화'는 변란을 겪고 있는 태국 바트화보다 못한 취급을 외환시장에서 받습니다. 경제지표들은 경보음을 내고 있고 체감 상황은 IMF 상황 못지 않습니다.
돈을 벌겠다며 우유에 멜라민을 섞어 붓는 세상입니다. "나는 돈 벌 테니 너희들은 죽어라"라는, 중국 낙농업자들의 심보에 몸서리를 치게 됩니다. 중국산 식재료가 세계 곳곳에 수출되어 있다 보니, 멜라민 공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촉발된 파생상품 위기 못지않게 얽히고 설켜 세상을 압박합니다.
돌아가는 상황이 이렇게 급박한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종부세를 만지작거립니다. 그것이 그토록 시급한 현안일까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슬픈 종부세'라는 글을 올려 이 같은 상황을 개탄합니다. "정부는 이 세금을 내는 2%의 납세자가 마치 좌파정책의 순교자라도 되는 양 사회정의가 온통 무너져 내린 것처럼 야단을 쳐대고 있다. 이보다 몇 배나 더 되는 사람들이 그날그날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이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나 보다."
이번 주 주말판에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에 관해 궁금한 것들을 정리해 실어봤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며 뷜러의 말을 이렇게 치환해 봅니다. "나쁜 국민은 없다. 그저 나쁜 정치인만 있을 뿐." 편안한 주말 되십시오.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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