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사회에서 '전라남도 장성군을 모르면 간첩'이란 말이 있다. '주식회사 장성군'으로 통하며 전국 지자체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는 곳. 광주광역시 북쪽에 인접한 인구 5만의 조그만 농촌도시는 어떤 비결로 전국이 주목하는 지방자치의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듣게 되었으며 대구경북의 지자체들은 장성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
◆11년 닦은 기반 성공의 발판으로
지난 1일 기자가 찾은 장성군 장성읍내는 비교적 조용했다. 군청 소재지인 이 곳은 한낮의 늦더위에 오가는 인적도 그리 많지 않았다. '숱한 화제가 사실이었나?' 싶을 정도로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그러나 군 청사에 들어서자 뭔가 색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장성군 청사 1층 로비는 여타 공공청사와 마찬가지로 군정 홍보물 전시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장성군의 이 공간은 로비 중앙을 중심으로 한 원 형태였다. 한번에 휙 둘러보기에 편한 배치. 2층 군수실 문 옆에 걸어놓은 '기업애로직소창구'라는 현판도 눈에 띄었다. 공무원들의 표정도 밝아보였다.
장성군 이기현 홍보담당은 "장성군은 민선 3기 동안 각종 기반을 다져놓았다. 4기 들어서는 굵직굵직한 사업을 유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선 1~3기 군수를 지낸 김흥식 전 군수 재임 시절, 군 구석구석에 닦아 놓은 도로나 공장터 등의 기반 시설을 토대 삼아 '국가개발촉진시범사업' 같은 중앙정부 사업이나 민자유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흥식 전 군수가 재임했던 민선 3기 11년간 장성군의 성적은 특출나다. 2004년부터 3년간 유치한 삼성·LG전자의 협력업체 등 첨단 제조업체만 군내에 50개에 달한다. 이로 인해 창출된 일자리 수는 1천200개. 2000년 이후 정부로부터 받은 각종 포상금만 100억원이 넘는다.
장성군 토박이라는 정대갑(35·식당업)씨는 "도로나 체육관 등 시설이나 농공단지 유치 등 성과로 변화가 많았다"며 장성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김상복 장성군의회 의장도 "김 전 군수가 민선 11년 동안 적은 예산을 적재적소에 쓰면서 군정을 소신껏 이끌었다"는 평가를 매겼다.
김 전 군수가 다져 놓은 이 같은 분위기는 민선 4기 유두석 전 군수(2006년 7월 1일~2007년 10월 25일 재임·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사퇴)와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이청 현 군수(유 전 군수의 부인)까지 대체적으로 큰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다.
◆변화의 중심 장성아카데미
장성군의 공무원들은 여느 지자체 공무원들과 다르다고 한다. 장성군에 공장을 지은 한 중소기업 사장은 공무원이 기업인과 이마를 맞대고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모습에 감동해 장성군의 투자 유치 홍보대사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장성군 공무원들의 변화를 견인한 이는 김흥식 전 군수이다. 1995년 7월 1일 민선 1기 군수로 취임한 그는 무사안일주의와 적당주의·복지부동·보신주의의 장(場)인 공무원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큰 공을 들였다. 취임 초기 그가 부하 공무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예산이 없어 어렵다" "관례가 없다" "규정에 나와 있지 않다"였다. 그 자신의 표현대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지만 결코 쉽지 않은 험산이었다.
그는 공무원 사고·행동의 변화에 착수했다. 그가 수단으로 삼은 것은 교육. 그는 "생각이 변하면 행동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면 습관이 변하며, 습관이 변하면 운명이 변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현재 수많은 지자체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강사 초청 특강 프로그램 '장성 아카데미'였다. 장성 아카데미는 홍길동의 고장으로 유명한 장성을 대표하는 최고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장성 아카데미에는 국내 최고의 강사들이 초청됐다. 물론 직원들과 의회의 반대에 봉착했다. 1주일 1회 특강이 많다며 의회에선 예산을 절반으로 삭감했다. 그러나 김 전 군수는 절반의 예산을 1주일 1회 특강으로 상반기에 다 써버리는 등 소신대로 정책을 밀어붙였다. "콩나물에 물을 주면 밑 빠진 독을 통해 그 물이 하릴없이 새어나가는 것 같지만, 흐르는 시간과 더불어 콩나물은 조금씩 자라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꾸준한 교육을 통해 서서히 성장하는 법이다"라는 '콩나물론'이 그 배경이었다.
각계 각층의 명사들이 들려주는 강연을 통해 군청 공무원은 물론 군민들도 서서히 '1등 리더, 1등 군민'으로 점차 변했다. 현재 588회 진행된 장성아카데미에 참석한 연인원만 20만명을 훌쩍 넘겼다. 또 전 직원을 선진국으로 해외 배낭연수를 보냈다. 선진의식을 직접 보고 배우고 느끼라는 의미에서였다. 현재 장성군청 전 직원이 2, 3회씩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이는 군 행정 선진화와 외국어 열풍으로 이어졌다. 이밖에 민간기업에 위탁교육 등 각종 교육 프로그램에 해마다 7억~9억원을 투입했다. 장성군은 행정선진화에도 많은 기록을 남겼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최초로 홈페이지를 만들었으며(1995년), 전국 지자체 최초로 전자결재 시스템을 도입(1997년)했다.
◆원칙맨·깡다구·불도저 리더십
김 전 군수는 사람을 존중하면서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는 원칙론을 고수했다. 그는 저서 '모드를 리더로 만든 CEO 군수, 김흥식 리더십'에서 '대다수 군민들이 반대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장성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흔들리지 않고 반대를 무릅썼다'고 밝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끝까지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군청 내부는 물론 지역민·유지·지역 언론과 숱한 마찰과 갈등을 겪었다. 김상복 장성군의회 의장은 "김 전 군수의 원칙론에 대해서는 '독선'이라는 평가도 있다"고 전했다. "군수가 너무 독단적이다" "너무 심하게 몰아붙인다"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한다"는 말은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군수의 소신 행정에 대한 지지로 바뀌었다. 이기현 홍보담당은 민선 1기 때 취임 직후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김 전 군수의 정책에 장성군 공무원들이 많이 힘들었음을 털어놨다. 그는 "그러나 민선 2기부터 타 시군에서 우리를 따라할 때 수월하게 보냈고, 민선 3기에는 바뀐 습성에 젖어 굉장히 편하게, 즐겁게 일했다"고 덧붙였다.
능력 위주의 인사는 군청 공무원들에게 일을 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김 전 군수는 선거 과정에서 다른 후보편에 섰던 공무원을 요직에 승진 발탁했다. 그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부 소수 집단의 힘에 굴복해 다음 선거나 준비하고 군민들로부터 인기나 얻는 군수가 될 수는 없었다. 그때마다 소신과 원칙을 가진 설득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저서에서 밝혔다. "나의 기준은 엄연히 '장성군의 미래'였다"라고도 했다. 혁신을 부르짖는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전남 장성에서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 장성 발전 초석 닦은 김흥식 전 군수는?
1937년 장성에서 태어났다. 광주사범학교 졸업 후 초교 교사와 행정 공무원, 교육위원을 거쳐 기업체에서 CEO를 지냈다. 1995년 지방자치 민선 1기부터 연속 3선으로 장성에서 군정을 이끈 뒤 퇴임했다. 행정에 경영 마인드를 접목한 김 군수의 지식경영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목록에도 올라있다. 군수 퇴임 이후 서울에서 살고 있으며 전국의 기업체와 각급 기관에서 장성군의 혁신 사례를 주제로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모두를 리더로 만든 CEO군수, 김흥식 리더십'이 있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