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인터넷 기능은 인간의 절대 제약인 시공간을 뛰어넘어 무한대의 통신영역을 넓혀 주었고 편지와 전화가 지닌 글과 말의 한계를 극복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급속히 확산되는 이 새로운 문명의 利器(이기)는 다른 경우나 마찬가지로 다수의 소비자들이 활용의 준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무제한 개방되었다. 이는 사람들이 그 기능을 제대로 알고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그 기능을 악용하는 경우 이를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최근 인기 여배우 최진실이 인터넷 통신을 통한 모함과 루머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끊음으로써 우리 사회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어떤 심리학자는 재벌급 기업이 도산하는 경우에 맞먹는 충격이라고 진단했다. 어느 사이 인터넷은 우리의 생활도구가 되어 자질구레한 전자상거래에서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걸치지 않는 부분이 없을 정도이며 그 오남용의 피해도 엄청나게 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터넷 문화의 앞장을 선 한국이 어쩔 수 없이 짊어진 업보일 것이다.
여당이 '최진실법'으로 이를 규제하고자 하니 야당이 자신들의 뿌리를 흔드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일이 생기면 정치권이 호들갑 떠는 모습은 여전하고 그 찬반의 발상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점도 언제나 같다. 그러나 인터넷이 우리 문화 패턴을 전면적으로 바꾸어 놓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제안한 '최진실법' 같은 단편적이고 즉흥적인 대응으로는 문제의 핵심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터넷은 언론, 출판, 학술, 교육, 무역, 행정 등 어느 분야에나 도입되어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도구인데 겨우 여배우의 이름을 딴 법조항으로 그 부정적인 기능만을 규제한다는 것은 폭우 쏟아지는 날에 옷 젖는 피해를 막겠다는 발상과 비슷하다. 새로운 문화형태를 법적 규범으로 만들려면 보다 폭넓고 신중한 자세와 전문적인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터넷은 그 기능상 부정적인 사례가 여러 가지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疏通(소통) 장애의 나라를 소통의 강국으로 변모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했으며 그래서 그동안 세계 사람들의 嫉視(질시)를 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앞장에 선 분야의 하나가 인터넷인 만큼 이를 보다 널리 보급해서 인터넷이 지닌 긍정적인 힘을 더욱 觸發(촉발)시켜야 할 것이다. 가령 인터넷이 북한 사회에 보급될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생각해 본다. 폐쇄 사회를 열어 나가는 데 인터넷만큼 강력한 도구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힘 있는 무기를 사용하는 방안을 개발하는 데 전문적이고 치밀한 연구가 있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는 전자공학이나 컴퓨터 공학만이 연구할 분야가 아니고 언어학, 번역학, 사회학, 정치학 등의 혼합 연구영역이며 또한 현대철학의 연구과제이기도 하다. 우리의 대학이 그 본래의 사명대로 문명의 앞장을 서려면 이러한 과제를 연구개발해서 사회에 제시해야 할 것이다.
언론으로서 인터넷은 이제 정말 뜨거운 감자가 되어가고 있다. 언론이 종래 엘리트 문화의 꽃이었다면 인터넷 언론은 대중문화의 꽃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래서 종래 잘나가던 언론이 휘청거리고 있으며 이는 언론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 정통언로를 유지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인터넷의 부정적인 단순규제보다 보다 본질적인 방향제시가 있어야 할 것이며 정통언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유포시키면서 인터넷에 기대를 걸고 있는 정치세력들이 앞으로 부메랑의 칼이 되어 자신들의 목을 칠 것을 예상해야 할 것이다.
유명우 (한국번역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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