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야 놀자] 부자들이 미술품을 사는 까닭

몇 주 전 영국 현대미술 작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가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 출품한 작품이 모두 팔려 하룻밤에 1천200여억원을 벌어들였다. 이는 단일 작가로서 최대가로 15년 만에 피카소가 보유하고 있던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날 나온 작품들 중 하이라이트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담긴 거대한 유리 상자에 죽은 소를 집어넣은 '황금 송아지'(The Golden Calf)였는데 무려 180억원에 팔렸다.

세계적으로 미술 시장에 붐이 일고 있다. 미술품이 석유와 금을 대체할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헤지펀드와 중동의 석유자금, 중국·러시아·인도 등의 신흥 부자들의 돈이 미술시장에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품이 갑부들에게 매력적인 소비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미술품을 구입하는 대표적인 이유인 단순한 미술 감상의 수단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 죽었다 깨어나도 살 수 없을 만큼 비싼 작품들의 미적 효용이라는 구입 이유는 설득력을 잃게 된다. 삼성 비자금 사건이 터졌을 때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것은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 가로·세로가 1m도 안 되는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90억원이나 한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소비결정 이론은 합리적인 소비자들을 가정하고, 소비자들은 자신의 소득과 소비대상 및 다른 유사한 상품의 가격 등을 고려해 소비를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자신의 소비 행위에 비추어 보면, 소득이나 가격만으로 소비행태를 설명하기엔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자신이 소비하고 있는 상품에 대한 만족 또는 불만족은 그 상품 자체의 특성 외에도 그 상품에 덧붙여진 여러 다른 유·무형의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손스틴 베블렌(Thorstein Bunde Veblen)은 이러한 소비의 심리적 요인에 주목하면서 소비의 실제와 기호에 관해 연구한 결과를 그의 저서 '유한계급론'으로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를 정체성과 명성의 유지 수단으로 해석했다. 17, 18세기 프랑스에서는 빨간색 굽 구두가 귀족 계급만이 신을 수 있는 신분의 상징이었다. 이처럼 어느 시대에나 상류층의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 혹은 특화된 이미지가 존재해 왔다. 그러나 공식 신분제가 무너진 오늘날의 대중사회에서는 소비로 '신분 구분 짓기'를 시도한다는 이론이 '베블렌 효과'이다.

'베블렌 효과'는 수요 법칙 측면에서 보면 예외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가격이 오르는데도 선호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미술품, 다이아몬드, 고급 자동차 등은 값이 내려가면 누구나 구입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가치가 떨어지고, 상류층은 구매를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소비 패턴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소비 양식이 전 사회구조에 스며들고 있다. 각 계층은 그들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까지 자기보다 나은 상위 계층의 생활양식을 본받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상위계층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사치재가 보통재가 되기도 한다. 비교적 고가의 루이비통 스피디백은 거리에 나가면 3초에 한번씩 볼 수 있다고 해서 '3초백'이라고 불리는데 이러한 것이 모방 소비 형태이다. 이렇게 모든 계층을 통해 모방 소비가 일어나면 상위계층은 자신들만을 구분 짓는 또 다른 형태의 새로운 소비재를 만들고 싶어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르디외는 경제적 자본만으로는 구분 짓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미술품과 같은 문화자본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문화자본'을 통해 차별화를 꿈꾸는 상류층의 욕구가 미술품 소비를 통해 표출된 것이다.

박경원(대구과학고 교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