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회의원 심부름꾼 만드는 '정당공천제' 폐지해야

[지방의회 현주소는?] (하)개선책은 없나

# "추석 선물 돌리고 인사할 때 나와 같이 가서 인사를 하면 얼마나 좋아요? 이런 건 민감한 사안이니 동장님들이 잘 챙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동네 행정사무감사 석상 회의 속기록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행정의 잘·잘못을 따지는 사무감사에서의 발언이 고작 의원인 자신을 홀대했다고 동장을 질타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 "예산에 대한 검토도 없이 '그냥 통과시키긴 그러니 무조건 5%로 삭감해라'고 우기는 기초의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렇게 하지 않아요. 컴퓨터 구입 예산이 180만원이라면 사양까지 따져보고 적정 삭감을 유도합니다." 당연히 따져야 하는 상식적인 일이었는데도 한 의원은 '우리는 정말 일 열심히 하고 있다'며 자랑했다.

◆수준 이하의 의회

한 고위 공무원은 "현장에서 접한 의원들의 의정활동은 정말 부끄럽고 유치한 수준"이라고 했다. 주민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의원 본인들의 이해관계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는 "도로를 내고, 공원을 짓는데도 자기 집 앞만을 고집한다. 큰 틀에서의 논의 없이 '무조건 내 앞마당'을 운운하는 식이다"고 혀를 내둘렀다. 세금으로 주는 의정비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라고 했다.

전문성이 부족하고, 의정활동에 전념하지 않는 데는 상당수 의원들이 또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 5급 공무원은 "본업이 있는 상태에서 월급제 의원을 하다 보니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큰 것 같다"며 "행정전반에 대한 공부 없이는 올바른 의정활동을 수행하기 어려운데 상당수 의원들은 회기 기간 중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할 뿐, 질문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고 사라진다"고 했다. 현재 대구 116명의 구군의원 중 직업을 갖고 있는 의원이 56명(48%)에 이른다. 그나마 공개적으로 밝힌 경우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까지 합하면 겸업 의원 수는 훨씬 많다.

의원들이 '주민들의 심부름꾼'이기보다는 '정당의 하부조직' 역할이 강하다는 비판도 곳곳에서 제기됐다. 한 의회 관계자는 "선거 활동에 나서는 것은 약과이고 지역구 국회의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심지어는 국회의원의 아내 일정까지 꼼꼼히 챙겨 보좌해주는 의원들도 상당수"라고 털어놨다.

한 의원은 "나도 이런 심부름꾼 생활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다음에도 공천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지 않으냐"며 "국회의원 마음을 사로잡아 공천을 따내야 의원으로 활동하며 주민을 대변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선에 나선 자기 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의회 일정을 미룬 의회도 있었다. 대구 북구의회는 지난해 11월 대선지원을 위해 세입세출안 심사와 본회의를 대선 이후로 연기하고, 3일간으로 예정돼 있던 예산안 종합심사를 하루로 줄이면서 졸속처리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매년 되풀이되는 '외유성' 해외 연수를 둘러싼 논란도 의회를 불신하게 만드는 한 요인이다. 지난해 의정비심의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변호사는 "관광으로만 꽉 짜여진 일정을 봐도 한숨이 나왔지만 초등학생도 인터넷만 검색하면 다 찾을 수 있는 그 나라의 일반현황과 자연, 사회문화, 기후 등으로 채워진 연수보고서를 보고는 아예 할 말을 잃었다"며 "관광으로 눈을 넓히는 것도 좋지만 그것은 본인 부담으로 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무늬만 의회, 개선책은 없는가?

기초의회 무용론과 함께 아예 해산시켜야 한다는 일각의 목소리까지 제기되고 있는 지금, 과연 의회를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만들 수 있는 개선책은 없을까?

전문가와 관계자들은 지방의회의 가장 시급한 개선책으로 '정당공천제 폐지'를 들었다. 박판년 남구의회 의장은 "정당공천제로 인해 정치권과 인맥이 닿지 않는 인물은 아무리 지역사회에 봉사할 뜻을 가졌더라도 기회를 박탈당하기 일쑤고, 당선된 기초의회 의원들까지 중앙 정치에 귀속돼 지방자치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며 정당공천제를 반대했다.

의회의 역할을 감시할 수 있는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경실련 조광현 사무처장은 "공천만 받으면 의정활동을 잘하고 못하고 관계없이 당선되는 분위기 탓에 주민을 무서워하지 않는 의회가 됐다"며 "주민들의 관심만이 제멋대로인 기초의회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주민 등으로 구성된 의정감시단이 꾸려지고 있다. 달성군에서는 두달 전 '달성지역발전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돼 기초의회는 물론이고 군의 행정까지 감시하기로 했다.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달성군공무원노조 손대혁 지부장은 "의회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할 곳은 사실상 공무원노조밖에 없어 주민들과의 연대가 필요해 함께 위원회를 결성했다"며 "앞으로 지속적인 감시를 통해 의회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지를 낱낱이 따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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