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동도 뒤꼭지를 비추는 석양빛은 처연하다. 올해는 가뭄이 심해 해국(海菊) 꽃망울이 유난히 작다. 동도를 오르는 계단 옆 해국들은 목마름에 겨워 두터운 잎을 늘어뜨리고 있다. 이 척박한 독도 바위틈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해국은 안분지족(安分知足)을 몸소 실현해 보이고 있다. 해국은 하늘이 물을 주지 않으면 스스로 꽃을 줄이고 잎을 오므릴 줄 안다.
동도에 오르는 길은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오르내리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계단이 없을 때는 험악한 등산로였다. 과거 독도 경비대원들은 이 험한 바윗길을 쌀포대를 둘러메고 기름깡통을 지고 올랐다. 그러다 보니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치는 일도 자주 있었다. 심지어 1957년에는 대원 한 사람이 부식을 나르다 벼랑으로 굴러 떨어져 순직하기도 했다.
동도 중턱을 오르면 기묘한 형태의 괴석(怪石)이 하나 서 있고 옆에는 성화 채화대가 있다. 성화 채화대는 2006년 김천 전국체전 때 채화를 위해 세웠다. 무궁화 꽃잎 문양의 조형물이 독도의 경관과 조응하지 못하고 어쩐지 이질감을 주는 느낌이다.
성화대를 비껴 댓 발자국 절벽 쪽으로 옮기면 초소와 같은 흰 건축물이 있다. 이름하여 망향정(望鄕亭). 이곳에서 보는 동해 바다는 일망무제(一望無際), 그저 아득할 따름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망향정'이라는 이름과 방향이 께름칙하다.
두 달마다 교대하는 경비대원과 1개월 단위로 오가는 등대원 3명이 거주인원의 전부인 동도에서 누가 망향정에 올라 눈물 지을 만큼 고향이 그리울까. 더 큰 문제는 망향정이 바라보는 방향이다. 울릉도와 본토가 있는 쪽이 아닌, 동남향 일본 쪽인데다 그 이름이 망향정이라니. 누가 어느 쪽을 보고 어느 고향을 그린다는 것인지?
망향정을 되돌아 나와 몇 계단을 더 오르면 널찍한 마루만한 쉴 공간이 있다. 위쪽으로는 돌망태 옹벽을 쌓은 시멘트 구조물이 있다. 유류탱크와 정화조 시설이다. 이곳 동도도 수세식 화장실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정화조는 울릉도와 마찬가지로 1년마다 청소를 하는데 한 번에 드는 비용이 3천만원에 이른다. 바지선에 분뇨처리 탱크로리를 싣고 와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이곳의 석유값도 운송비가 기름값과 맞먹을 정도이다.
경비대 막사 앞까지는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20㎡ 남짓한 막사 공터 앞에는 빨간 우체통이 있어 정겹다. 2003년 4월에 세우고 '799-805'란 우편번호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우체통이 있어도 조형물에 불과하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우표를 붙인 편지를 넣어도 배달이 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국회의원들이 동도를 방문해 일본 정부 기관 등에 독도 관련 항의서한을 보내려고 했지만 독도우체통을 이용하지 못하고 결국 울릉도에 나가서 부칠 수밖에 없었다.
2005년에도 '기능 상실한 독도 우체통'이 논란이 된 적이 있어 당시 경북체신청에서는 '독도에서 부친 편지는 독도 소인을 찍도록 검토한다'고 한 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물론 요즈음에는 독도경비대 신세대 대원들이 편지를 써서 부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폰메일과 인터넷으로 해결한다. 그렇지만 1년에 한 통이라도 편지가 오고가서 우체통이 본연의 기능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편물 수집과 소인 날인 등의 업무는 경비대나 등대에 위탁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물론 상징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소용없이 두는 것보다는 나을 듯싶다.
기자는 독도에 들어오면서 개인 우편엽서 1천장을 인쇄해왔다. 독도 소인이 찍힌 독도의 엽서로 각계각층에 독도문제를 환기시키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독도 소인 엽서는 고사하고 일일이 울릉도에 인편으로 부치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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