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관우 장비는 성은 다르나 의를 맺어 형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한날 한시에 태어나지는 못했으나 한날에 죽기를 원하니 하늘과 땅의 신령께서 살펴주시고 의리를 저버리는 자가 있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이소서.'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꽃 한창인 동산에서 검은 소와 흰말의 피와 고기를 나눠 먹고 맺은 도원결의다. 관리를 죽이고 쫓기던 관우와 싸움하기 좋아하던 장비는 유비를 큰형님으로 모시고 따른다. 유비가 후한(後漢) 황실 혈통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세 사람은 연전연승했고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에 따라 촉나라를 세웠다.
관우는 잘나갔지만 오나라(동오) 여몽과 육손의 계략에 빠져 형주를 잃고 목숨까지 잃었다. 그의 나이 58세였다.
관우의 죽음에 유비는 심한 충격을 받는다. 그는 '우리는 한날 한시에 죽기로 약속하고 의형제를 맺었다'며 도원결의를 상기시킨다. 이제 관우가 죽었으니 의형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목숨을 걸고 복수전에 나서겠다는 말이다.
제갈공명은 '죽고 사는 것은 천명에 달린 것'이라며 유비를 위로하고 '부디 옥체를 보양하신 후 천천히 원수 갚을 대책을 세우라'고 조언한다. 유비는 사흘이 지나도록 물 한 모금, 밥 한 숟가락 먹지 않고 울기만 한다.
유비는 '맹세코 동오의 손권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관우를 죽인 손권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지목한 것이다. 그리고 군사를 일으켜 손권의 죄를 묻고 하늘에 맺힌 한을 풀겠다고 천명한다.
유비가 관우를 잃고 분개하는 모습은 미치광이에 가깝다. 결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 형제의 의리를 중시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묘사하기 위해 작가가 그랬을 것이다. ('책 속 인물 읽기'임에도 책 속 인물이 아니라 작가 나관중을 주요 인물로 끄집어낸 이유다.)
나관중은 개인적 이유로 유비를 특히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같은 행위를 놓고도 유비와 그 형제의 행위는 미담으로, 조조나 손권, 여몽의 행위는 비열한 행위로 본다. 말하자면 나관중은 행위를 문제삼은 게 아니라 누가 그 행위를 했느냐에 따라 평가를 달리했다. 그는 옳거나 그름을 따지지 않았다. 유비 관우 장비가 행하면 옳고, 그들의 적이 행하면 모조리 얕은 술수나 야비한 행위로 보았다.
예컨대 관우를 죽였던 오나라 장수 여몽의 계략과 민심 수습책을 '장수답지 못한 비열한 행위'로 몰아세웠다. 유비가 민심을 챙기면 덕이고, 여몽이 민심을 챙기면 '전장의 장수가 백성까지 계략에 이용하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이에 반해 유비가 이 사람 저 사람 모조리 챙기는 모습은 '군자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조조가 관우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극진히 대접한 행위조차 곱게 보지 않았다. 집도 절도 없는 관우에게 그처럼 훌륭한 대접을 했지만 관우는 유비와 형제를 맺었다며 떠난다. 나관중은 이 장면을 '형제의 아름다운 의리'로 본다. 여기저기 떠도는 여포를 배은망덕한 놈으로 몰아세우는 것과 사뭇 다르다.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통해 '의형제'를 맺고 그처럼 끈끈하게 뭉쳐 한 시대를 풍미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와 끈끈한 형제애는 작가 나관중의 바람이라고 봐야 한다.
작가는 유비 관우 장비의 의리를 '사나이들 의리'로 미화했지만 따지고 보면 세 사람의 의리는 '우리편 편들기' '패거리주의'에 불과하다. 세 사람은 기껏 칼잡이와 돗자리 장수였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해낼 수 없는 인물들이 의형제를 맺고 한탕 잘 해먹었을 뿐이다. 큰 그림이 없는 거친 사나이들의 의리 하나로 뭉쳤으니 통일대업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나관중의 평가대로 유비 관우 장비가 그렇게 훌륭한 인물이었다면 만인이 그들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했고, 진작에 삼국을 통일했어야 했다. 그러나 사실 위 촉 오 삼국 중 유비의 촉나라는 가장 허약했다. 나관중이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지만 유비 형제의 덕이나 의리란 것은 기껏해야 소 군벌의 패거리주의에 불과했을 것이다. 조조 쪽에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 이 사실을 방증한다.
나관중은 어째서 그처럼 유비를 미화했을까? 망해버린 한나라에 대한 로망 때문에? 그래서 한 고조 유방과 한 방울이라도 피가 섞였을지 모를 유비에게 끌렸을까?
당시 천하를 통일하고 민심을 수습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인물은 조조라고 봐야 한다. 만약 제갈공명이 유비를 돕지 않고 조조를 도왔다면 어땠을까? (물론 이는 삼국지에 묘사된 것처럼 제갈공명의 능력이 뛰어났다는 가정 아래에서다.) 그랬더라면 천하는 삼분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제갈공명과 유비 관우 장비는 통일을 가로막고 당시 사람들을 오랜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인물이기도 하다.
유비도 죽고 제갈공명도 죽고 나관중도 죽었다. 그들이 천하를 다투던 세월은 말 먼지와 함께 사라졌다. 실제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는 없다. 많은 현대 독자들은 당시 상황을 사실과 전혀 다르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은 것은 나관중의 이야기뿐이다. 유비 관우 장비 제갈공명은 나관중이 깎아 만든 목각 인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중국인들은 대륙을 쪼개는 데 몰두한 유비나 제갈공명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삼국지를 우리나라 사람처럼 열심히 읽지도 않는다고 한다.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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