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 문한구 교수는 소아신경학 전문의다. 소아신경학 분야는 1983년에서야 동호회 수준의 국내 첫 전문의 모임이 생겼을 만큼 역사가 길지 않다.
문 교수는 대구경북권에서는 처음으로 소아신경학을 전공해 1984년부터 진료를 시작했고, 2003년 대한소아신경학회 대구경북지회의 초대 회장을 맡았다. 문 교수는 "초창기 때만 해도 손에 꼽을 만큼 전문의가 적었지만 이젠 주요 대학병원마다 소아신경학을 전공한 선생님들이 한두 분은 있다"며 "대구경북 소아신경학이 이만큼 성장했다는 데 대해 이 분야 1세대로 보람을 느낀다"고 뿌듯해 했다.
사실 소아신경학만큼 까다로운 학문도 드물다. 전문 지식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수많은 실전 경험을 쌓아야 비로소 훌륭한 전문의로 성장할 수 있는 까닭이다. 왜 전문지식과 함께 수많은 경험이 중요한지 뇌성마비를 예로 들어보자. 뇌성마비는 미성숙한 뇌의 병변이나 결함에 의해 운동 및 자세의 이상을 보이는 비진행성 만성 운동장애를 일컫는다.
뇌의 이상으로 인해 걷기, 앉기 등 신체 운동기능에 장애가 생기거나 팔 다리나 몸통 등이 비틀리고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그 원인이 되는 뇌손상이 시기적으로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어린 아이의 뇌에서 발생해 장애를 일으킨다. 비진행성이라는 말은 운동장애가 뇌종양이나 퇴행성질환 같이 점점 진행, 악화되는 병은 아니라는 뜻. 이런 뇌성마비는 말 그대로 운동장애가 주된 증상이지만 운동장애가 있다고 모두 뇌성마비는 아니다.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프라더윌리병이나 근육에 힘을 주지못하는 유전성 척수성근위축증이 대표적. 문 교수는 "뇌성마비 진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 많은 소아신경학 혹은 재활의학 분야 전문의의 진찰소견"이라며 "뇌성마비처럼 보이지만 뇌성마비와는 다른 유전병이나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들은 그에 맞게 치료 방법을 달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아신경학 분야의 또 따른 특징은 좀체 보기 힘든 낯선 증상들이 부지기수라는 것. 소아신경학에서 주로 다루는 분야는 소아간질, 뇌성마비, 정신지체 증상이지만 좀 더 자세히 파고들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증상들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당뇨와 같은 성인병은 하나의 증상에 많은 표본이 몰려 있는데 반해 소아신경학은 증상이 다양하고 표본도 많지 않다.
1966년 오스트리아 빈의 소아과 의사인 레트가 병원을 찾은 두 명의 여자아이 증상을 관찰해 발표하면서 처음 알려지게 된 레트증후군 또한 뇌성마비로 잘못 판단할 수 있는 희귀 신경질환의 하나다. 레트증후군은 출생 후 5~18개월까지는 목 가누기, 뒤집기, 눈 맞춤, 앉고 걷기, 말하기 등 정상 발달 과정을 보이다가 점차 정신적, 신체적 기능 저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1984년 심포지엄에서야 진단 기준의 틀이 마련된 이 병은 머리가 자라지 않고 주변 사물에 관심이 없어지는 자폐증 등의 증상이 발현된 후 2,3개월 내에 빠른 속도로 언어능력이 없어지거나 잘 걷지 못하고 경련'발작을 동반하는 발달 퇴행이 일어난다. 문 교수는 "소아신경학 분야에는 레트증후군처럼 숙련된 전문의라 하더라도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병들이 수두룩하다"고 귀띔했다.
지난 25년간 이 같은 소아신경학 진단'치료에 매진해 온 문 교수는 '소아간질' 연구에 가장 큰 관심을 가져왔다. 소아간질은 소아신경학의 어떤 다른 증상보다도 비중이 큰 분야. 어른과 달리 증상이 없어지거나 억제될 가능성도 있다. 아직까지 '간질은 왜 생길까' 하는 의문에 매달려 있는 문교수는 1990년 미국 위스콘신대 의대 신경학교실에서 객원교수 자격으로 1년간 간질 발생기전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어떤 병이든 원인을 알아야 병을 치료할 수 있고, 왜 생기는지 알면 간질이라는 병도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것.
대구경북에 소아신경학 전문의가 전무했던 시절, 안타까움 반 도전정신 반으로 이 분야를 전공했던 문 교수는 "학문적 호기심이 발동했고, 치료방법을 찾지 못하는 소아 환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며 "재활병원처럼 소아 환자들을 종합적으로 돌봐줄 수 있는 통합의료센터가 대구에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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