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에서 보면 입장객들에게 안내 브로셔를 나눠주는 곳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앙방재센터입니다."
지난 달 6일 찾은 일본 교토의 긴카쿠지(金閣寺)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지만 완벽한 방재시스템을 자랑하는 곳이다. 금으로 입혔다고 해서 '금각사'로 불리는 로쿠온지(鹿苑寺)에서는 모든 것이 감시 대상이다. CC-TV는 기본. 적외선 카메라는 관람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고 있었다.
◆금각사의 방재시스템
"금을 떼갈까봐 그러느냐"는 기자의 어리석은 질문에 오가타 호슈(60) 스님은 "정부의 방재 기준으로는 문화재를 지킬 수 없다. 스스로 지켜야하지 않겠냐"며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고가 난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를 탓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얘기였다.
1950년 7월 2일 녹원사는 한 행자승이 불을 질러 뼈대만 남기고 모두 타버렸다. 이후 다시 금을 입혀 금각사로 거듭났다. 이 때문에 사찰 내부 어느 곳이든 화재에는 유별나다고 할 만큼 방재시스템이 완벽해 보였다. 건물들도 목조건물처럼 보였지만 실은 화재에 대비한 철조건물이었다. 사찰 직원들이 낮에는 2명, 밤에는 4명씩 사찰 전체를 24시간 관리한다. 주로 소방관 출신을 직원으로 고용한다는 귀띔도 있었다.
녹원사 입구에 붙은 '경내금연'이라는 표지판 외에는 보통 사찰과 별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화재에 관해선 철옹성이나 다름 없었다. 65㎜ 소방호스가 연결된 소화전 30개를 갖추고 있었다. 사찰의 문화재적 가치와 미관을 고려해 매장형 소화전을 둔 것도 흥미로웠다. 소방시설들은 1년에 한 번 금각사에 불이 난 7월 2일을 전후해 정기점검을 하고 있다.
오가타 스님은 "한국의 숭례문 화재를 보고 슬펐다"고 했다. 스님은 "문화재를 지키고자 하는 시설도 중요하지만 문화재를 지키고자 하는 의식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조직하고 지킨다
"재난이 나는 걸 막을 순 없지요. 최소화하는 게 우리의 몫이죠."
지난 달 8일 찾은 인구 1만5천여명의 교토시 슈하치(朱八) 지역은 자주방재회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곳 회장인 기오시 다케시타(59)씨는 "교토시가 지진에 비교적 안전한 곳이지만 늘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며 "대규모 재난이 일어날 경우 이웃주민들이 곧 우리의 구출자가 된다"고 했다. 우리의 의용소방대와 비슷한 자주방재회는 지역 주민 100여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무급 자원봉사로 일하고 있었다. 정부로부터 연간 100만엔(1천만원 상당)을 지원받아 공용 물품 구입과 방재 강연 등에 쓰고 있다고 했다. 자주방재회가 있는 동네 답게 이 지역은 집집마다 물동이를 내놓고 있었다. 화재 대비용이다. 지진이 발생할 경우 2차 피해로 화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달 2일 찾은 돗토리현(鳥取縣) 치츠쇼 지역도 마찬가지. 인구 8천600명, 2천800가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전체의 93%가 산지다. 주민 스스로의 소방단이 가동되고 있었다. 40세 미만의 주민 530명이 소방단에 가입해 있다. 이들 역시 수해가 잦은 지역의 특성 때문에 주민 스스로가 대피장소를 정해 대피법을 숙지하는 것은 물론, 지역 살리기 운동까지 전개하고 있다.
치츠쇼 지역 진흥협의회장 가토(57)씨는 "방재를 목적으로 주민들이 힘을 합치기 시작했는데 방재 이후를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지역을 살리는 데까지 영역을 넓히게 됐다"며 "정부에 손을 내밀기 전에 우리 스스로가 재난에 대비하고 지역을 살리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동네 위험은 우리가 제일 잘 압니다."
지진이 잦은 일본은 행정력에 기대를 거의 하지 않는 눈치였다. 특히 10분 내외로 재난이 끝나기 때문에 초동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교토대 방재연구소 거대재해연구센터 노리오 오카다 교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에 행정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며 "재난 대비를 총괄하는 것은 정부지만 방재전략을 세울 때 반드시 감안하는 게 지역 커뮤니티"라고 했다. 사고가 나면 공무원 탓만 하는 우리 실정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는 "1차적으로 자신의 집 어디가 위험한지 스스로가 가장 잘 알듯, 지역 커뮤니티가 그 동네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일본의 자주방재 조직률은 2004년까지 62.5%에 달했다. (표) 정부가 방대한 방재시스템 구축에 앞장서기보다 주민 스스로 조직하는 시스템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돗토리현 관계자는 "정부가 할 수 있는 방재시스템에는 한계가 있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주민들의 의견을 수합해 재난 위험 지도를 만드는 등 공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주는 것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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