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민연금 주식투자, 도전인가 도박인가

'국민연금 궤멸론' 때문에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외 증시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정부와 국민연금공단 측이 앞으로 연금기금의 주식시장 투자비율을 40%까지 늘리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올 들어 국민연금은 주식시장에서 얼마나 손실을 입었고, 연금기금 운용의 핵심이 돼야 할 '안정성' 대신 '수익성'을 택했을 때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알아봤다.

◆국민연금 궤멸론

'시골의사'로 유명한 경제평론가 박경철씨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행하는 '나라경제' 9월호에 '국민연금의 주식시장 비중확대를 생각한다'라는 글을 썼다. 그는 '연못 속의 고래'라는 표현으로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 확대를 경고했다. "고래 한 마리가 연못에 들어가 있으면 수면이 높아지고 거기에는 배들이 떠다닐 수 있다. 하지만 고래가 빠져나가면 그 연못은 금세 바닥을 드러낸다. 연금이 투자하고 있는 동안은 장부상의 이익을 내고 있을 터이지만, 연금이 빠져나가는 순간부터 장부상의 이익은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연금이 자금을 절반만 회수해도 시장은 아비규환에 빠지게 된다. 높은 수면만 보고 배를 띄웠던 행락객들은 덩달아 바닥에 곤두박질을 치기 때문이다." 여기서 연못은 국내 주식시장을, 고래는 국민연금기금 중 주식시장 투자규모를, 행락객은 개미 투자자를 의미한다.

그의 주장은 간단 명료하다. 국민연금은 앞으로 당분간 연금적립액이 지속적으로 늘어나 최대 2천조원이 넘는 수준이 된다. 국민연금 발표대로 연금기금 중 40%를 주식시장에 투자한다면 800조~900조원 이상의 돈이 주식시장에 들어간다는 뜻이 되고, 이는 현재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800조원 남짓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아닐 수 없다. 바꿔 말하면,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무리 시장에서 빠져나가도 국민연금기금이라는 돈이 주식시장을 떠받치는 이상, 주식시장은 하락할 수도 없고 장기 투자를 고려한다면 반드시 이익을 실현(매도)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는 듯이다. 바로 연못 속에 고래가 들어가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고래가 계속 연못 속에 있을 수는 없다. 언젠가 연금 수입액보다 지급액이 많아지는 시점에 이르면 고래는 몸집을 줄여나가야 한다. 연금 수익률이 서너배에 이르러서 자금 규모가 수천조원에 이른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고래가 연못에서 빠져나가려는 순간부터 대혼란이 시작된다. 박경철의 표현을 빌려보자. "문제는 프라이스 세터(주식가격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 여기서는 국민연금기금)가 파는 자산은 우주선 귀환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가격이 떨어진다. 잉어나 메기가 고래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7년에서 2008년 사이 외국인 투자자가 보유지분을 10% 줄였을 때, 우리 증시는 무려 30%가 하락했다. 국민연금이라는 새로운 고래가 등장해서 그것을 받아주는데도 그렇다." 때문에 한나라당 의원들조자 "국내외 증시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추가 투입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국민연금이 노후를 보장하는 것이 목적인 만큼 수익률 제고만 신경쓰지 말고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7월까지 주식투자에서 6조원 손해

미국발 금융공황이 우리 미래를 책임질 종자돈을 갉아먹어버렸다. 국민연금기금의 해외주식투자 손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 손실액이 1조원에 이른다는 말도 나온다. 리먼브러더스·메릴린치·AIG 3개 회사에서 500억원, 공적자금이 투입된 2개 모기지 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 500억원으로 합쳐서 1천억원에 이른다. 이 중 상당액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 투자가 이뤄졌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민주당 전혜숙 의원은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7년 8월 시작)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상황에서 국민연금기금 운용을 위탁받은 해외 위탁사가 모기지 업체에 대한 주식투자를 더 늘려 손실 규모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이 이들 두 회사 주식에 투자한 금액은 2006년 804만달러에서 지난해 2천968만달러로 늘었다. 나머지 투자는 올해 이뤄졌다.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기금이 해외주식에 투자한 금액은 올 7월까지 10조4천168억원. 이 중 절반가량은 올해 투자했다. 하지만 7월 말 현재 해외주식의 시가평가액은 9조6천284억원으로 1조원 가까운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국내증시마저 가라앉으면서 올 들어 7월까지 국민연금이 전체 주식투자에서 입은 평가손실이 6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이 한나라당 유일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7월까지 국민연금은 주식투자에서 6조697억원의 손실을 봤다. 국내 주식에서 4조9천806억원, 해외에서 1조891억원의 평가손을 봤다. 다행히 채권에서는 5조5천708억원의 평가이익을 냈지만 주식 부문에서 손실액이 급증하면서 7월 들어 전체 수익률은 마이너스(―0.13%)로 돌아섰다. 8월과 9월에도 국내외 주가가 크게 하락했기 때문에 올해 전체 연간 수익률을 따졌을 때 손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연금기금 규모는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228조원으로, 이 중 99.6%가 금융부문을 통해 운용되며 주식투자금은 국내 32조원, 국외 9조원에 이른다. 아울러 올해 말까지 약 7조원을 더 투입해 총 17조원을 해외주식에 쏟을 예정이며, 2009년에는 다시 10조원을 늘려 총 27조원이 해외주식에 배정될 예정이다. 국민연금기금 중기 자산배분안에 따를 경우 앞으로 5년 후인 2013년엔 해외주식 비중이 더욱 대규모로 늘어난다.

◆안정성보다는 수익성?

올해 상황만 놓고 볼 때 그마나 막대한 액수의 손실을 막은 것이 채권이지만 국민연금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큰 채권 대신 위험이 높은 주식투자에 대한 비중을 높이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박해춘 공단 이사장은 지난 7월 "기금 운용공사 출범 전까지 수익률을 2% 높이겠다"며 "2012년 말까지 주식투자 비중을 현재 17.5%인 것을 40%까지 높이고 채권 투자비중은 80%에서 50%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당초 기금운용위원회가 2012년까지 30% 이상으로 한다고 계획을 세운 것보다 10%포인트나 높은 것이다. 현재 국민연금 규모가 230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5년간 추가매수 여력이 50조원에 이르며, 매년 10조원씩 증시에 쏟아 붇겠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까지 연금기금 운용원칙을 '안정성'을 우선으로 했던 국민연금은 지난해부터 이를 '수익성'으로 바꾸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민주노총 등 납부자 대표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를 금융전문가들로만 구성하기로 하고 특수법인인 기금운용공사까지 두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가입자의 위임을 받지 않은 전문가들에게 연금의 미래를 맡겼다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경우 과연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냐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가 기금운용공사까지 두면서 위험성이 큰 주식투자에 몰두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연금 고갈속도를 늦춰보겠다는 것. 연금제도를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개선했지만 효과는 한시적이다. 2040년대 초반 연금 고갈이 예상되고,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우려되면서 그 대비책으로 수익을 늘려서 부족한 책임준비금을 늘려보겠다는 의도. 운용수익률을 1% 높이면 기금 소진 연도가 9년 연장되거나 보험료율이 2% 떨어지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에서 나온 것.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연금기금의 수익률을 현재의 갑절 수준인 10%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아울러 증시가 폭락할 경우에 이를 막는 수단으로 사용하겠다는 정부 생각도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처럼 연금 운용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면 채권 등 다양한 분산투자를 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전국 공공서비스노동조합은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이해가 없는 금융전문가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왔고, 연금기금 운용에 대한 최고의결기구의 모든 자리가 금융전문가로 채워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국민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대박을 꿈꾸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고 말한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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