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저자와 대화] '지금 행복해' 출간한 소설가 성석제

소설가 성석제씨가 새 소설집 '지금 행복해'(창비)를 출간했다. 소설집 '참말로 좋은 날'(2006) 이후 2년 만에 펴낸 열한 번째 소설집으로 단편 9편을 묶은 것이다. 작가 특유의 입담과 재치 넘치는 유머는 이번 작품집에서도 여전하다. 이전 작품에 등장한 인물들과 이번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에 차이가 있다면 구체성과 현실감일 것이다. 말하자면 이전 소설에 등장했던 똥깐(조동관 약전의 동관), 청카바(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읍내 깡패들 등은 어딘가 좀 환상적인 데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좀 다르다.

"과장되거나 엉뚱한 인물, 상황이 아니라 살면서 실제로 목격할 수 있는 삶의 살결, 관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작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 이웃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인물들이 맞닥뜨리는 상황 역시 우리가 일상에서 언제라도 부딪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각 인물들의 이야기는 가깝게 와닿는다.

이번 소설집에는 유난히 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여행' '설악 풍정' '피서지에서 생긴 일'을 비롯해, 낚시 이야기를 다룬 '낚다 섞다 낚이다 엮이다' 역시 여행을 소재로 한다. 산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기적처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기적처럼' 역시 여행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겠다.

작가는 여행에 천착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여행은 삶의 축약판이자 인생의 희로애락과 인간군상의 내면을 드러내는 소재다. 대체로 여행은 즐거움과 설렘으로 시작되지만 예기치 않은 난관을 맞게 되고 가끔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 동물성과 폭력성이 폭발한다."

작가는 여행을 무엇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겪는 것, 겪는 것이라기보다 체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행은 살아간다는 점에서 일상과 같다. 그러나 일상에는 결핍하기 쉬운 필수영양소, 그러니까 모험, 돌발적 상황, 즉흥성, 황당함 등을 여행을 통해 섭취한다."

결국 작가는 여행을 통해 사람살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첫 작품 '여행'은 이런 작가의 의도를, 여행지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유로 보여준다.

고향 친구인 만재 봉수 영덕 세 사람은 무전(無錢)여행을 시작한다. 무전여행이기는 하지만 오랜 우정과 떠남에 대한 기대로 이들의 출발은 즐겁다. 그러나 돌발적인 사건과 사고가 이어지면서 여행은 고통으로 변해간다. 이제 사소한 것들에서도 갈등과 대립이 끼어든다. 만재의 배탈은 이들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배탈은 언제 어디서라도 생길 수 있는 사소한 일 아닌가. 이 사소한 배탈이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것은 사람살이에 관한 은유이기도 하다.

'여행'이 인간내면에 숨겨진 동물적 본능을 들춰내는 것이라면 '설악풍정'이나 '피서지에서 생긴 일'은 여행지에서 발생하는 온갖 코믹한 상황과 에피소드를 모은 것이다.

표제작인 '지금 행복해'는 인생 파탄에 이른 아버지의 삶을 회상하는 아들의 기록이다. 아들은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에 대해 어떤 악감정도 가지지 않는다. 또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어떤 권위도 가지지 않는다. 이들 사이에 흐르는 것은 가족애도 연대감도 아니다. 두 사람은 다만 한 인간 대 인간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런 가족형태 역시 우리이웃들 속에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지금부터 평등하게 친구처럼 지내자.'

여기서 '친구처럼 지내자'는 아버지의 말은 신세대 아빠들이 다감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 나이 어린 아들에게 건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아들에 대한 아버지 자신의 위치를 규정하는 말이라고 봐야 한다.

소설가 이기호씨는 성석제의 이번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설악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도, 교도소에 수시로 들락거려도, 대마초 중독자가 되어도, 재래식 화장실에 빠져도, 릴낚시에 끌려 수십 미터를 질질 끌려가도 등장인물들은 걱정 하나 없이 느긋하다. 우리 또한 그 인물들이 모두 안전할 것임을 알고 있다.'

말하자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상황이 웃음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성석제의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웃음을 터뜨린다면 우리가 그 속에서 '비애'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성석제의 소설은 늘 그랬다. 실컷 웃었는데 웃고 나면 그 안에 웃음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속에는 슬픔이라고 해야 할, '슬프다'고 간단히 규정할 수 없는 비극미가 배어 있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단맛이 가득 밴 '웃음'을 씹었는데 책장을 덮고 난 뒤 입안에 고이는 것은 쓴맛이다.

성석제씨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는 틀림없이 재미있는 작가다. 작품뿐만 아니라 일상의 대화에서도 그는 사람을 웃긴다.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듣는 사람은 키들키들 웃음부터 터뜨린다. (이전에 어떤 신문의 기자는 '성석제씨를 만나보니 웃기기보다 진지하더라'고 했는데 내가 만나본 성석제 작가는 언제나 웃겼다.) 한번은 작가의 대학시절 수상경력에 대해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그는 대학시절 학교문예에서 가작으로 당선됐다. 당선작 없는 가작이 아니라 당선작이 따로 있는 가작, 말하자면 상을 받기는 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큰상을 받고 보니 앞으로 내가 세계문학을 책임져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는 매사를 재미있게 볼 줄 안다.

성석제 작가는 최근 제1회 동아시아문학포럼 한국, 일본, 중국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 지금은 부산국제영화제에 게스트로 참가해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있다고 했다. 장편소설을 구상 중인데,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다른 장르의 예술작품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영화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작가 성석제의 몸으로 스며들었다가 나올 때면 '희한한 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성석제=1960년 경북상주 출생, 연세대 법학과 졸업.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아빠'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왕을 찾아서' '궁전의 새' '순정' '소풍' '참말로 좋은 날' 등을 썼다. 산문집으로 '농담하는 카메라'가 있다. 한국일보 문학상, 동서문학상, 이효석 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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