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2월, 대구 도심에 있는 경북대 사대 부설중 본관 건물에 화재가 났다. 1923년에 지어진 교사는 겨울바람 속 타오르는 화마를 견디지 못해 12개 교실이 몽땅 타버렸다. 붉은 벽돌 건물을 뒤덮고 있었던 담쟁이 덩굴들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유서 깊은 건물의 갑작스러운 소실은 시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특히 세찬 불길 속 담쟁이 덩굴들의 죽음에 연민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그 이듬해 봄이었던가, 불타버린 그 자리에서 어린잎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몇 년 가지 않아 건물 벽은 다시 무성한 담쟁이 숲을 이루었다.
담쟁이의 생명력은 참으로 놀라울 정도다. 한 번 심어두면 그뿐 특별히 물을 주지도 거름을 주지 않아도 쑥쑥 잘도 큰다. 변덕 부리는 날씨에도 의연한 담쟁이는 그저 스쳐가는 바람, 몇 모금의 빗물만으로도 군말 없이 잘 자란다. 식물에도 성격이 있기 마련이다. 담쟁이는 순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러면서도 강인한 생활력을 가진 또순이 같다. 높은 벽이며 나무를 기어오르는 덩굴손에서 볼 수 있듯 인내의 미덕 또한 놀랍다.
국내외적으로 불어닥치는 경기침체의 寒波(한파)가 심상치 않다. 부쩍 얇아진 지갑에 소시민들의 한숨소리도 커져 가고 있다. 제2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벌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 근심걱정으로 날밤 새우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나쁘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주저앉지는 말 일이다. 그 연약한 담쟁이도 드센 불길을 이겨내지 않았던가.
도종환의 시 '담쟁이'는 사방이 아득한 절망 속에서도 담쟁이처럼 결코 희망을 잃지 말라고 노래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대구시가 내년부터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는 2011년까지 3년간 담쟁이 덩굴 100만 본 심기 운동을 전개한다고 12일 밝혔다. 지구 온난화 등으로 심각해지고 있는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무채색의 도시공간을 생명이 살아있는 녹색 환경으로 바꾸기 위해서란다. 무뚝뚝한 회색 건물들이 푸른 빛 넘실대는 생명의 공간으로 바뀌어져 가는 광경,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해진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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