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섬유산업 '20년 암흑 터널' 벗어난다

[대구섬유 재도약 호기 살려라] (상)다시 온 기회

경북 왜관공단 내 덕우실업은 요즘 신바람이 난다. 올 들어 9월까지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0%나 늘었기 때문이다. 13년 전 창업한 이래 최고의 매출 신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한 달 평균 수출액은 120만달러를 넘는다. 이 업체가 생산하는 제품은 메모리 섬유 등 기능성 원단으로 이탈리아 등 유럽지역에 수출한다.

전국 섬유업체의 16.1%, 수출 16.6%, 합섬직물 소재 생산의 90%를 차지하는, 세계적인 섬유산지인 대구경북 섬유업계가 최근 환율 급등을 기회 삼아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수출 호조, 가동률 상승=대구경북 섬유 수출 증가세는 전국 증가율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적이다. 특히 지역 전체 수출의 11%를 차지하는 미국 수출이 크게 늘었다. 미국시장으로의 섬유수출은 1억8천6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2% 증가했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한몫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져오던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가 다품종 소량 체제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대량 생산에 따른 덤핑 행위 등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주력인 폴리에스터 직물 실적도 대단해 올해 단일 품목으론 처음으로 7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 섬유업체 172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평균 가동률 역시 꾸준한 상승추세다.

◆10년 전엔 기회 놓쳐=지역 섬유업계에서는 현재 상황이 10년 전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전 환율은 880원 선이었다가 1천400원을 거쳐 1천800원까지 치솟았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지역 섬유산업은 생산과잉 상태였다. 소품종 대량생산에 따른 출혈 경쟁으로 단가는 낮아지고 채산성은 나빠졌다.

당시 지역 섬유업체들은 외형은 컸지만 재무구조는 부실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만약 외환위기로 환율이 급등하지 않았다면 업체 절반 정도가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구 한 섬유업체는 외환위기 당시 폐업 위기에서 환율 폭등에 힘입어 한 달에 24억원의 환차익을 올리면서 재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환율 상승 효과는 그리 길지 않았다. 중국이 부상하면서 침체기가 이어졌다. IMF는 수출기업들에게 환차익을 줬지만 대신 내수경기 침체를 낳았다.

가장 큰 문제는 소품종 대량생산 관행이었다. 기능성이 필요없이 쉽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단가 싸움을 벌이는 혈투가 계속된 것이 섬유산업 침체를 앞당겼다. 중국의 등장으로 수출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다시 기회는 왔다='환율 호기'가 다시 찾아온 지금은 10년 전과 상황이 다르다는 평가가 많다. 우선 가격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다. 최대 경쟁국이었던 중국은 주춤하고 있다. 위안화가 20% 절상된데다 지난해 10월 신노동법이 발효되면서 중국내 인건비는 40% 올랐다. 베이징 올림픽 영향으로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부가가치세 환급액이 감소한 것도 우리에게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역 섬유업체의 기술력도 점차 발전하고 있다. 특히 기능성 섬유의 수준은 세계적이라는 평가다. 섬유업체들이 해외마케팅을 강화하고 직수출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한국섬유마케팅센터(KTC)와 대구섬유마케팅센터(DMC) 등이 해외와 내수시장 공략을 도왔다. KTC에 따르면 회원사는 2004년 18개에서 올해 56개로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섬유인도 달라졌다=외환위기 뒤 환차익을 거둔 일부 업체들은 재투자보다는 부동산 투기 등에 관심을 쏟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지역 섬유인들은 이미지 변신에 나섰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은 지난 2월 '대구경북 섬유 신문화 창조' 원년 선포식을 가졌다. 신제품 개발, 신틈새시장 개척, 세계 일류지향의 산업기틀 마련을 위해 모방 지양과 덤핑 방지, 우수인재 양성, 투자 등을 실천하기로 했다. 섬개연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21개 섬유업체가 참여한 '대구경북섬유산업 신문화창조협의회'를 구성해 업계에 만연한 모방 근절문화를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기술개발에 눈을 돌리는 기업도 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 등록한 '기업부설연구소'를 설치한 업체는 지난해 말 현재 56개사로 2005년(38개)에 비해 47.4% 증가했다.

해외마케팅을 강화하기 위해 무역부를 설치한 업체는 지난해 전체의 15.5%로 2005년 7.2%에 비해 늘었다.

손상모 KTC 이사장은 "세계 경기 침체로 수출시장 규모가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의 고환율은 섬유산업의 부흥을 이끌 수 있다"면서 "환율 호기를 놓치지 말고 해외마케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문영 계명대 패션마케팅학과 교수는 "시장 흐름에 대한 조사 분석으로 최종 소비자의 기호를 읽어야 한다"면서 "패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시장조사를 철저히 해서 팔릴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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