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동의 전시 찍어보기] 간송미술관의 가을 전시회

보화각 설립 70주년기념 서화대전/간송미술관/~10.26

일 년에 두 번 봄가을에 개최하는 간송미술관의 10월 전시가 시작됐다. 이번 가을전시는 간송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이었던 '보화각' 설립 70주년을 기념해서 자체의 소장품들 중에서 조선시대 서화의 각 시기별 대표작들을 선정해서 구성했다. 그동안 꾸준히 간송을 찾았던 사람들이라면 여러 번 보았을 것들이지만 많은 명품들을 한자리에서 다시 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정선의 '청풍계(淸風溪)'나 김홍도의 '마상청앵(馬上廳鶯)', 신윤복의 '미인도' 등을 비롯해서 안평대군과 정조, 추사 등의 글씨들이 대거 나와 있어 전통서화 애호가들이라면 무척이나 반길 전시회다.

최근 조선시대 화원 이야기를 다룬 한 TV드라마의 영향인 듯 특히 신윤복의 미인도는 관람객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명품들이란 몇 번을 봐도 좋은 그림들이지만 이번엔 그 앞에 붐비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서 이런 큰 그림들은 먼발치에서 대충보게 된다. 될 수 있으면 사람이 적은 작은 그림들로 가서 잠시라도 더 꼼꼼히 살필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다. 그 덕분인지 작은 그림 두 점에서 의외의 감흥을 받은 것만으로 만족하여 나왔다. 2층 전시장에는 국보135호로 지정되어 있는 '혜원전신첩'에 들어있는 풍속화 6점이 나와 있다. 그 가운데 평소 잘 내보이지 않았던 '문종심사(聞鍾尋寺)'가 특별히 눈에 띄었다. 지체가 있어 보이는 한 부인이 시종을 대동한 채 산사를 찾아가는 도중인데 산길에서 조우한 한 승려의 마중을 받는 장면이다. 흥취가 느껴지는 단원의 능란한 붓놀림과 달리 혜원의 붓질은 빠르지 않고 신중하되 아주 정확하고 섬세하다. 그런 용의주도함으로 바늘같이 정교하면서도 힘 있는 세선들을 사용하는데, 근경에 있는 어린 소나무 군락과 화면 뒤편으로 펼쳐지는 키 큰 나무숲을 묘사하는 정치함이 그의 사실에는 소홀함이 없고 분위기가 모두 자연스럽고 실감이 난다. 여백이 특징인 우리 미술이지만 서양의 원근법이나 플랑드르 미술의 전통과 비교하며 즐겨도 또 다른 감흥을 느낄만하다. 혜원의 그림들은 형상이나 주제를 덮어놓고서 그 색감만 봐도 감탄할만한 풍부한 정서를 느낀다.

이의양의 '대마도부중'과 '서박포' 두 점도 이번에 새롭게 눈에 띄는 그림들이다. 1812년 일본사행을 다녀와 그린 것인데 겸재의 진경묘사와도 색감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먹과 붓의 사용이 간결하며 칼칼한 명징함과 산뜻함 등이 느껴져 소위 19세기의 신감각이라고 하는 북산파 그림들의 맑고 청아한 분위기가 이런데서 비롯되었는지 생각해 보게 했다.

개장 첫날 입장객이 장사진을 이루어 관람 불편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전시방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얘기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전시방식은 유물을 보다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좋다. 화첩은 이런 식의 전시 방식이 아니고서는 그 세밀한 선묘들의 정치한 맛을 다 볼 수 없다. 다만 시설에 비해 사람이 너무 몰려 불편을 겪긴 하지만 비싼 입장료에 큰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도 관객이 몰리면 제대로 된 감상이 어려운건 마찬가지다. 늘어난 관객을 원망할 순 없을 테니까 미리 사정을 알고 가면 좋다. 상설 전시실을 운영하는 미술관으로의 변화도 기대해 보면서.

김영동 미술평론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