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게 아니라 '쏟아붓더라'고요. '비를 맞으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눈앞이 안 보일 정도니까 말 다했죠. 나이 육십에 그런 비는 처음 봤어요."
지난 8월 15일 집중호우가 내린 경북 의성군 점곡면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2시간 후 비는 그쳤다. 하지만 강우량은 100㎜를 훌쩍 넘었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비. 이런 비가 이제 한국에 내리기 시작했다.
실제 지구의 평균기온은 지난 100년간 0.74℃ 상승했고, 우리나라도 1.5도 상승했다. 한국의 경우 해수면이 매년 평균 1~2㎜씩 상승, 지구 온난화현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 집중호우 발생빈도도 1980년대 이후 증가 추세를 보여 연 5.3회에서 8.8회로 늘었다. 강수일은 120일에서 100일로 줄어든 반면 강수량은 1천100㎜에서 1천300㎜ 이상으로 증가해 집중현상을 보이고 있다. 태풍의 피해도 2002년 '루사'와 2003년의 '매미'는 단일 피해로는 가장 많은 6조원과 5조원에 이르는 재산피해를 가져왔다. 자연재해가 전쟁 수준으로 변한 사례다. 이 때문에 재난에 대응하는 방식도 "과거와 같이 원상복구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본의 경우 '재발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지만 "땜질식 처방을 계속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태도가 재난예방 선진국임을 실감케했다.
◆돗토리현의 방재시스템-"사람과 자연이 공존해야 재난에서 안전하다"
돗토리현 이치노세지구 토사 재해현장을 찾은 지난달 4일. 이곳은 1998년 9월 17일 채석장이 붕괴돼 마을이 물에 잠기면서 34가구 121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후 2002년과 2004년 잇따라 토사로 인한 피해가 난 곳이었다. 이후 돗토리현에서는 지난 2004~2007년까지 총공사비 70억엔(한화 700억원)을 들여 산 정상 토사 44만㎡ 배출공사를 시작하고 둑쌓기와 하천 유로공사, 식목 등 대책공사에 들어갔다. 공사에는 '자연을 최대한 살린다'는 단서가 붙었다. 그래서 그 흔한 사방댐이 이곳에 단 하나만 있다고 했다. 지반을 단단하게 하기 위한 것일 뿐, 생태계 단절과는 관계없다고 했다. 특히 28억엔을 들인 하천터널(길이 230m) 공사가 눈길을 끌었다.
침수피해를 방지한다는 목적도 있지만 주민 120여명을 위해 무려 70억엔을 투입한다는 것은 '경제논리'와는 큰 괴리감이 느껴졌다. 돗토리현 관계자는 "행정보다는 국민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앞서기 때문에 국가나 지방정부가 개인에게 이주를 강요할 수 없다"며 "주민들 또한 "이사 가겠다'는 의사를 먼저 밝혀오지도 않아 아예 검토조차 하지 않고 공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재난에 대비하는 시스템도 확연히 달랐다. 재해발생시 휴대전화를 통한 공무원 소집시스템은 한국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위성과 헬기를 동원한 방재행정 무선 네트워크는 배울 만했다. 소방방재 헬기에서 찍은 재해 상황은 재해대책본부를 거쳐 일반가정의 TV로 곧바로 전달되고 있었다. 돗토리현은 이 같은 시스템을 이용, 올 2월부터 토사재해 경계정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빗물 활용하는 도쿄의 스미다구-"자연을 활용하자"
'물은 때론 재앙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인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존재다.'
지난달 3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墨田區)에 있는 빗물 박물관은 "무심결에 흘려버리는 빗물도 관리만 잘하면 자원으로 활용하고 재난 예방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기에 충분했다. 이 구(區)는 면적 13.75㎢, 인구 23만명이 살고 있지만 2개의 강(스미다 강, 아라카와 강)이 도시를 에워싸고 있어 비가 왔을 때 침수 위험이 상존하는 지역이다.
스미다구 공무원 무라세(57)씨는 1991년 구청장을 설득, 구청 건물 지하에 1천t 용량의 빗물탱크를 설치하게 했다. 기관·가정마다 빗물을 모으는 '작은 댐'(탱크)을 만들고 나중에 빗물을 식수나 청소용으로 쓰자는 아이디어였다. 자연재해를 막고 자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범사례로 기록됐다.
1995년부터 가정집에도 옥외 빗물탱크가 설치되기 시작, 현재는 200여가구에 설치돼 있다. 구청에서 가구당 설치비용의 50%(2만5천~3만5천엔, 한화 25만~35만원)을 보조해준다. 25t 규모의 큰 지하탱크를 설치할 경우 120만엔의 비용 중 100만엔을 지원해준다. 그러나 기업체가 설치한 빗물탱크는 지원하지 않는다. 기업에 사회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무라세씨는 "지난 7월에는 바닥면적 500㎡ 이상의 건축물을 신축할 경우 빗물탱크 설치를 의무화하는 '빗물 조례'도 제정·발효됐으며 일본 내 다른 지자체에서 많이 견학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프로 스모 경기가 열리는 료고쿠(兩國) 국기관도 민간건물로는 처음으로 지붕이 빗물을 모을 수 있도록 설계돼 지하에 1천t 규모의 빗물탱크가 설치돼 있다. '제2의 도쿄타워'로 불리며 2011년 준공을 목표로 짓고 있는 높이 610m의 '스미다 타워'에도 지하 빗물 탱크가 설치될 예정이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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